[음반] 베토벤 교향곡 전집 / 한스 슈미트-이세르슈테트
한스 슈미트-이세르슈테트의 음악은 한마디로 말하면 명료하고 깔끔하면서 우아하다.
프레이징에 머뭇거림이나 애매함이 없기에 악구의 연결과 리듬의 완급조절은 부자연스럽거나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음량 조절에서도 특정 파트의 과도한 강조나 억제가 느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아티큘레이션으로 음악을 전개해 나가기 때문의 그의 연주는 전체적인 구조의 안정성이 유지되면서 세부적인 묘사가 정치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나는 이 지휘자의 음반을 통해서 클래식 음악의 세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즉,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대략 40년전쯤 그의 베토벤 교향곡 제3번의 음악을 듣고 음악의 감동을 경험한 이래 나는 평생의 취미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물론 성음의 라이선스 음반을 통해서 그의 음악을 들었는데, 그 당시 내가 갖고 있던 LP는 지금 내게 없다.
이 전집 박스에는 9곡의 교향곡외에 박하우스와 녹음한 5곡의 피아노협주곡과 헨릭 셰링과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베토벤의 대표적인 서곡들이 포함되어있다. 박하우스와의 피아노 협조곡은 따로 데카 레이블의 개별음반이나 협주곡집으로 나왔으나, 셰링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런던 심포니와 함께 했으며 원래 필립스 레이블에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쓰레기 처리하듯 낡은 녹음을 싸구려 박스물로 출시하는 음반 시장의 현재 상황에 비추어 보면 이런 호사스러운 박스 전집은 진흙속에 감추어진 진주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와 유사한 베토벤 박스물로는 EMI의 클럼페러의 박스물이 있는데, 그 박스에는 베토벤 교향곡과 바렌보임이 피아노를 연주한 협주곡5곡, 그리고 합창환상곡이 포함되어 있다.
베토벤 교향곡 전집 중 누구의 전집이 가장 뛰어난가에 대해서 이런 저런 평이 있다. 나도 한 때는 그런 평가의 논쟁에 참여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모든 음반은 다 나름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토스카니니의 호쾌한 분위기의 전집도 시원시원한 매력이 있고, 멩겔베르그의 멜랑콜리한 분위기 감도는 전집도 아련한 회고적 매력이 있으며 푸르트벵글러의 숭고미 넘치는 전집도 매력이 있고 오토 클럼페러의 호흡이 길고 보폭이 큰 연주 전집도 매력이 있다. 그런데 불가피하게 베토벤의 교향곡 전집 중 딱 한개만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정제된 조화미가 특징인 다비드 조각상 같은 이 전집을 골라들 것 같다. 1960년대의 녹음임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에 담긴 빈 필의 탁월한 연주력은 그 이후 그 어떤 지휘자도 구현하지 못한것 같다. 2차 대전 후 그 음악적 인생을 온전하게 빈 필과 함께 한 칼 뵘은 물론 클라우디오 아바도 조차도 빈 필과 남긴 베토벤 교향곡 전집에 관한 한, 한스 슈미트-이세르슈테트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