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부모와 자식

sunis 2024. 6. 17. 05:41

요즘은 10시 전후에 잠이 들어 새벽에 잠이 깬다.

 

얼마전 까지는 그 동안 두어번 잠이 깨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중간에 깨는 일이 없다.

 

피곤함 때문인지 또는 수면 사이클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딸내미는 지난 6일 시골에 내려와 복분자와 불루베리 수확을 거들다가 지난 금요일 상경했다.

 

사위의 반찬이라도 챙겨주려니 불루베리 택배 배송이 없는 주말을 이용해 잠시 올라간 것이다.

 

 

오늘은 부모와 자식은 무엇인지 새벽에 일어나 생각하게 되었다.

 

보통 자식은 유년기에 절대적으로 부모에 의존해서 삶을 이어가면서 

 

안정감과 자신이 사랑받고 존중 받는다는 사실을 통해서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다가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에 이를 때 쯤이면 부모를 관찰하면서 어른의 삶에 실망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아이를 중심으로 해서 아동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고 평가하지만,

 

나는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성장 과정에 불과하다고 본다.

 

아이를 중심으로 한 요즘의 소위 "금쪽이 마케팅"에 관심을 집중하는 부모들은 인간성장의 보편성을 모르는것 같다.

 

자기 주도적인 사색과 고민이 없이 외부에서 편하게 받아들이는 정보와 조언에서 해답을 찾는 게으름의 결과다.

 

 

인격의 형성은 어쩌면 유년기의 의존적인 상황과 청소년기의 갈등 상황이 어떻게 부모에 의해 관리되는가에 달린것 같다.

 

미숙한 부모는 그러한 변화의 시점에 각각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외부에서 정보와 조언을 구하지만,

 

내 삶은 돌아볼 때 결국 답은 부모의 일관성과 책임감, 그리고 자식의 타고난 본성에 달린 문제가 아닌가싶다.

 

 

나는 어린시절 무척 과분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자랐다.

 

여기서 과분하다는 것은 당대의 평균적인 흐름에 비추어 그렇다는 것이다.

 

베이비 붐 세대에 앞자리에 속한 나는 어려운 시대에 태어났지만 그 시대를 넘어선 세상에서 살았다.

 

아니 그런 세상을 살도록 주위에서 돌봐 주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차차 인식이 자라면서 

 

무언가 내 삶이 개인적인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에서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부터 인격적인 갈등 상황이 생기기 시작했고 부모에 대한 의심이 들기도 했다.

 

나름 머리가 컸다고 부모를 평가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경우에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이 단계에서 큰 변환점을 맞지 않을까 싶다.

 

우리 세대는 대체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할 즈음에 부모와 자식이 큰 위험을 맞는다.

 

지금은 아무나 본인이 원하면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지만 내가 자란 시대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정권을 부모가 쥐고 행사하는 경우가 대분이있다.

 

우리 세대의 부모들은 보통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자식의 진로에 개입했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는 좀 달랐다.

 

 

나의 아버지는 돈 보다 더 중요한게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기 보다는 머리속에 남을 것을 물려주고 싶다던 분이었다.

 

그러면서 나의 아버지는 부모로서의 책임감과  떳떳한 모습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평범한 삶을 산 분이지만 그 내면의 신념과 철학(?)은 비범한 분이었다.

 

자식에게 자신이 부모에게 받은것 이상을 해주는 것이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보았고,

 

내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 분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도 그렇게 아버지 흉내를 내려고 노력했다.

 

아마 대학을 두번씩 다니도록 한 아비도 나 말고는 별로 없을것이다.

 

그 이유가 단지 대학의 네임 벨류를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적성에 적합한지를 기준으로 한다면 말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다가,

 

졸업할 즈음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하자 병역 문제를 염두에 둔 아버지는 

 

먼저 군대에 다녀온 후에 유학을 가던 무엇을 하던 하자고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나의 아버지는 제대 후 호구지책이 없던 나에게

 

결혼과 시험공부를 모두 지원해 주었었다.

 

이 시대의 흐름에 비추어 매우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실천하는 것이 내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기질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에 대해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나와 나의 아내에게서 난 지금의 내 딸내미를 보면 그런 확신이 든다.

 

적당히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어 가면서 남들과 엇비슷한 삶을 살면서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삶.

 

그것을 대부분이 사람은 무난하고 현명한 삶이라고 하지만, 

 

나는 한 인생이 이 지구상에서 한 생을 살아가는 것은 무수한 생명의 순환과는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한 인격의 고유한 가치가 스스로에게 확인되지 않는다면 늘 시류에 끌려가는 피곤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시골에 내려온 가장 큰 이유도 비록 작고 초라할 지라도

 

남이 만들어 놓은 삶의 무대가 아닌 내가 만들어가는 내 삶의 무대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를 모르는 친구들은

 

왜 서울서 가까운 곳에서 전원주택을 짓고 서울을 오가면서 살지 그러냐고 한다.

 

또 불루베리를 받아서 먹어 본 친구 중 하나는 

 

왜 불루베리를 큰것과 작은 것을 구분해서 판매하지 않고 함께 섞어서 보내냐고 의아해 했다.

 

애초에 나와 가족 친지가 먹을 요량으로 키운 불루베리와 그 결실을

 

크고 작은 것을 구분해서 나누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한 것을 모르는 탓이리라. 

 

 

무엇이 옳고 현명한 것인지를 내가 단언해서 말할 수는 없다.

 

단지 자신이 생각을 할 줄 아는 인간이라면 스스로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바라기로는 내 딸내미도 적당히 세상에 맞추어 사는 안일한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