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속물주의와 교양

sunis 2022. 12. 25. 14:53

인간세상에서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해결해야하는 사람의 삶은 천상의 삶과 다를 수밖에 없기에 어차피 인생은 속물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속물과 그 속물들의 성공지향적 태도를 속물주의로 비난해왔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모순과 역설의 뒤엉킴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 속물이 아니기를 바라고 더러는 스스로도 속물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한다. 여기서 인간의 가치와 인격의 등급이 갈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속물은 사전적으로 "교양이 없거나 식견이 좁고 세속적인 일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 된다. 결국 세속적인 문제에서 초연할 수 없어도 속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행동적 표지는 교양과 식견의 유무로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교양이라는 말에도 파고든 속물주의를 배격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면에서 헤겔이 법철학에서 언급한 교양에 관한 말들은 보편성의 기준에서 매우 유의미하다고 본다. 헤겔의 교양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서 말한다면, 단순한 지식의 축적을 넘어선 수준의 객관적인 자아의 확립의 유무에 의해 구분된다. 즉, 나와 상대방의 입장을 이성의 형평추에 올려서 자신의 이익에 치우친 판단과 행동을 하지 않을 정도의 보편적인 태도와 인식체계를 갖춘자가 교양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세속의 삶을 사는 사람이 속물이냐 아니냐를 구분할 지점이 발생한다. 즉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으로 세상사를 판단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균형을 잃는 자들이 전형적인 속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게 적어도 자신은 속물이 아닌것으로 평판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주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중심의 이익과 보상체계가 무너질 상황에 이른다고 느끼면 속물적인 인간은 그 진면목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모든 상황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고 타인의 입장이나 사정은 자신의 고려 사항에서 사소하거나 의미가 없는 것으로 단정하면서 자기 만족의 논리를 집요하게 만들어간다. 어렵게 이야기할 것이 없이, 가끔씩 가십성 기사로 나오는 소위 "갑질"사고가 이런 속물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또는 자신의 일그러진 허영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약자에게 일방적인 굴욕을 강요하고 그 과정에서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기만족을 느끼는 인간들이 갑질 논란에서 보인다. 이런 속물은 당연히 대중의 비난을 받지만 그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던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속물의 대열에 부지불식간에 들어서는 상황을 볼 수 있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결혼을 앞두고 양가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이런 속물주의가 충돌하는 장면이다. 자식을 자기와 분리된 인생의 주체로 인정하지 못하고, 결혼 당사자의 무게를 부모의 입장에서 저울질하여 상대방과 자신을 보편적인 공정성의 기준에서 평가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상황은 너무도 쉽게 목격된다. 나 역시 내 자식의 결혼을 앞두고 이런 속물적인 심성으로 괴로워했음을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한 줌의 염치를 부여쥐고 내 자식 못지 않게 남의 자식도 그 부모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식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나의 마음은 점차 평온해 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식의 삶은 나의 삶의 일부가 아니라는 부모 자식간의 인격 분리를 인정하고 나니 흔들림이 사라질 수 있었다. 세상에서 자기 자식이 잘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주변에서는 결혼 상대방은 물론 자식과 부모간에도 결혼 과정에서 씻기 힘든 갈등 상황으로 접어드는 것이 쉽게 목격된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서 보일 때면 쓸쓸한 상실감이 느끼게된다. 내인생을 둘러싼 허위의 장식물들이 하나씩 벗겨지는 상황이 그런 상실감의 이유일 것이다. 

 

그 후에 찾아오는 감정의 찜찜함을 날려버리기 위해서 속물은 또 더욱 속물주의에 자신을 몰입시켜서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거듭나게 한다. 그래서 나름 속물주의에서 발을 빼려는 자들을 비현실적이거나 위선적인 인물로 낙인 찍어 자신의 속물적 특성을 중화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혹, 단 한 번이라도 단테의 신곡 중, <지옥(Inferno)>편을 읽어 본 적이 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밥먹고 사는데 아무 도움도 안되는 그런 책을 무엇하러 읽느냐는 굳건한 속물에게는 이런 말도 할 필요가 없지만. 그래서 결국 교양이 없고 식견이 좁은 사람이 속물일 수 밖에 없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