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와 성경책
사진을 클릭하면 유튜브를 통해서 콜린 데이비스가 지휘한 모짜르트의 Vesperae를 감상할 수 있음
내 성경책은 요즘은 거의 읽지 않을 옛날 번역본이다.
그러니까 1956년 대한성서공회에서 발행한 오래된 번역체의 성경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내가 이 성경을 갖고 있는 사연을 되돌아 보니 이승에서 작별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내가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 나는 종교 문제로 처가의 반대에 직면한 경험이 있다. 즉 장모께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관계로 처가에서는 신자가 아닌 사람과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것 같다. 나는 당시에도 특정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홀로 절에 다니는 어머니를 보아오던 터라 결혼을 계기로 갑작스럽게 교회에 가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 불편해서 결혼의 조건으로 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장모의 말씀을 완강하게 거절했었다. 즉 결혼을 위하여 다니지 않던 교회를 갑작스럽게 다닌다는 것은 처가에서는 반가운 일일 수 있으나 본가의 어머니께는 매우 서운한 일일 수 있어 그렇게 할 수 없노라고 단호하게 말했던 기억이 있다. 이 일은 장모와 장인 그리고 처가에 큰 마음의 아픔으로 남았던것 같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고도 처가에 가면 늘 장모는 내가 교회에 다니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곤 했었다. 그러면서 장모가 우선 읽어보라고 건네 준 성경책이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는 오래된 성경책이다. 30년이 넘어가는 세월 동안 이사를 하고 책들을 정리하면서도 내가 이 성경책을 갖고 있었던 것은 장모의 소원을 흔쾌히 들어 드리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성경책을 음악을 들을 때 아주 요긴하게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서양 음악의 줄기를 따라가다보면 결국 종교음악을 빼 놓고 음악의 전반적인 이해가 불가능한데 그럴때면 나는 각종 미사곡은 물론, 수난곡이나 칸타타를 들을 때, 라틴어나 독일어 가사를 이해하기 위해 성경을 참고해야 할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제도 바흐의 칸타다며 모짜르트의 저녁기도(Vesperae) 미사곡을 들으며 문득 성경책을 꺼내 해당 구절을 읽게 되었는데 이 성경책을 보니 돌아가신 장모가 생각난 것이다. 성격이 붙임성이 부족한 맞사위라 마주하면 늘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이었으리라. 장모 역시도 나와 비슷한 성격이었던것 같다. 세간에서 말하는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과는 거리가 있는, 감정표시가 그렇게 야단스럽지 않았던 그런 분이었다. 그런것이 젊은 시절에는 은근히 서운한 감정도 없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내 자신을 보는 눈이 생기게되자 장모가 내게 가깝게 다가서기에는 내가 너무 완고하게 자기 확신의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점도 크게 작용했으리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장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힘겹게 병원에서 투병 중에 있을 때의 일이다. 저녁에 아내와 문병을 가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힘든 상황에 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런 경황 중에 의사가 회진을 와서 "내가 누군지 아시겠어요?"라고 묻고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차례로 물었던 적도 있었다. 그럴 때에는 가족을 간혹 못알아보는 경우도 있었는데, 문득 장모가 의사가 지목해서 묻지도 않은 멀찍이 서있던 나를 가리키면서 "우리 큰 사위예요"라고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자기 가슴에 담은 감정을 남에게 말로 다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게 좋은 감정이건 나쁜 감정이건 그렇다. 아마도 장모에게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막내 처남이 눈에 밟혔을 것이다. 그리고 일찌감치 멀쩡한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딸을 고생시키는 맞사위에 대한 서운함과 안타까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모는 단 한 번도 내게 그런 서운한 마음을 표시한 적이 없다. 그것은 장인의 경우도 그랬다. 애지 중지하는 자기 딸을 배필로 맞아 살아가는 사위에게 가슴에 담은 서운함 조차 쉽게 드러내지 못한 장인 장모의 모습이 그래서 이제는 딸을 시집 보내야 하는 즈음이 되니 유난히 많이 떠오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3월에 상경해서 사돈 될 내외분을 만난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도 문득 번개처럼 장인과 장모가 떠올랐었다. 35년전 나를 바라보며 당신의 딸을 보내도 좋을지를 가늠하며 착잡했을 심정이 내 마음에 순간적으로 불꽃 처럼 떠올랐었다. 물론 부모가 걱정한 자식의 삶이 부모의 바람대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부모의 뜻대로 자식의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여기기에, 단지 서로가 좋아하고 아끼고 위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더 바랄것이 없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지만 마음 한 켠에 쓸쓸한 기운이 스쳐가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나이가 먹는 다는 것이, 이렇게 뒤들 돌아 볼 일이 앞을 내다 볼 일 보다 많아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마냥 인생이 덧없다는 생각을 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 나 처럼 미욱한 사람은 아주 천천히 직접 시간을 경험으로 살아내야 자신이 살아온 삶의 모습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데, 늦게 나마 나와 내 주변 사람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되는 것이 나이가 덤으로 준 선물이라면, 그것은 내가 살아온 세월이 청구한 주름살과 흰머리라는 대가에 비추어서 그렇게 손해가 나는 거래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 가면 내일에 대한 욕심보다는 어제에 대한 감사를 다행스러워해야 하는게 옳을것 같다.
어제는 망중한을 틈타서 아내와 함께 이웃에 있는 청보리 농장에 산책을 다녀왔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아내에게서 장모의 모습이 보인다.
※ 인물사진은 퍼 가지 마세요.
나는 성경 중에 유난히 시편(Psalms)을 좋아한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시편을 평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내용이 보편적인 인간의 양심과 도덕성에 비추어서 가장 호소력이 크게 느껴지는데, 그런 점은 시편에 나오는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억지스럽거나 과장스럽게 미화되지 않고 비교적 솔직하게 서술된 점도 한 몫하는것 같다. 성경 중에 구약과 신약을 통털어 수 회에 걸쳐 통독한 성경은 시편이 유일할 것이다. 위에서 링크한 모짜르트의 저녁기도는 시편 110편 부터 117편의 내용에 누가복음 1장 46절부터 55절까지의 <마리아의 찬미>부분을 포함한 미사곡으로 음악적 아름다움이 종교적 신심과 혼연일체로 융합된 곡인것 같다. 어찌 들으면 오페라의 아리아와 합창을 듣는 착각까지 들 정도로 그 아름다움의 정도가 농밀하기 그지없다.
오이겐 요훔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녹음한 EMI음반과, 페터 슈라이어가 드레스텐 슈타트카펠레와 녹음한 필립스반이 내가 처음 들었던 가장 좋아하는 연주 녹음 음반이다. 물론 이 음반들은 모짜르트의 대관식 미사(Coronation Mass)와 함께 커플링 돼 있다.
혹시 음반을 따로 구입하려는 분이 있다면 나는 니콜라스 아르농쿠르가 콘첸티스 무지쿠스 빈을 지휘하여 1986년 녹음한 텔덱반을 추천하고 싶다. 이 음반 역시 대관식 미사와 베스페레가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아르농쿠르의 베스페레 녹음은 전례 음악의 전통을 되살려 각 시편 시작전에 마치 서주처럼 안티폰을 낭송한 후 시편을 노래하고 다시 안티폰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연주 자체도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과의 초기 녹음들에서 간혹 느껴지던 부자연스러운 강조와 음악적 비약이 보이지 않고 매우 절제된 표현으로 보편성이 높은 수준을 제시한 녹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