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또래는 대체로 목욕탕에 대한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지금 이시대를 사는 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명절을 앞두고 붐비던 목욕탕의 분위기는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에게만 있는 어린 시절의 짙은 향수가 담긴 추억의 하나다. 목욕탕 직원이 잠자리채 같은 뜰채로 탕에 둥둥 떠다니던 때를 걷어내던 모습을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여탕으로 향하는 어머니는 목욕탕에서 빨리 나오지 말고 때를 천천히 불려서 깨끗하게 씻기고 나오라고 아버지에게 신신당부 했었고, 아버지는 나와 동생까지 아들 둘을 맡아서 씻껴야 했기에 힘이 들었겠지만 그래도 좌우에 아들을 하나씩 병풍처럼 두루고 목욕을 하는 것을 매우 흐믓해 하셨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어린시절의 목욕탕은 그리 쾌적하거나 기분좋은 느낌은 없었기에 목욕이란 다소 번거롭고 더러는 짜증스러운 의례적인 행사 같았다.
그러던 내가 온천을 특별하게 좋아하는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가 온천을 각별히 좋아하셨다. 내가 30대 초반이던 시절, 월급쟁이 시절의 나는 대략 5월에 4~5일 남짓의 휴가를 내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온천과 사찰을 순례하곤 했었다. 어머니는 전국 각지의 좋은 사찰을 찾아 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와 함께 하면서 주변에 온천이 있으면 온천욕을 하는것을 좋아했었다. 내가 결혼 후에는, 그 시절 흔히 모두들 참여하던 하계휴가외에, 음력 사월초파일을 전후한 때에 맞추어 휴가를 내서 부모님과 함께 전국 사찰순례와 함께 온천순례를 계획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전국을 차례로 돌아다니곤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워낙 온천욕을 좋아했기에 주말이면 서울에서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의 온천을 두루 찾아다니기도 했다. 당시 아버지는 온천욕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아들 며느리와 손녀딸을 대동하고 주말에 온천욕을 핑계로 하루를 함께 하는 것을 더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주말에는 크리스마스를 핑계로 아이들이 다녀갔다.
눈이 내리고 매우 추운 날씨라 굳이 시골에 내려오는 것을 말렸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기에 더는 막지 못고 아이들과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냈다. 나는 문득 사위와 함께 온천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사위는 나만큼 흔쾌히 장인과 목욕을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듯 하여 더는 권하지 않고 아이들을 보낸 후 오늘 아내와 함께 온천을 다녀왔다.
내가 시골로 이사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함께 고려한 것이 주변에 온천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충주의 경우도 인근에 있는 수안보 온천 때문에 적극적으로 고려한 이주지였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의외라고 여기는 일체의 연고가 없는 고창으로 내려온 데는 부지불식간에 읍내 외곽 방장산 아래에 있는 석정 온천이라는 존재도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겠다. 겨울철 온천은 다른 계절에 비해 각별한 만족이 부가적으로 따른다. 추운 계절에 노천탕에 앉아 머리를 스치는 찬바람과는 대조적으로 온몸에 감기는 따뜻한 온천수의 안락함을 느끼는 것은 세상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하고 호사스러운 사치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눈이라도 내린 경우에는 휘날리는 눈발과 노천탕 주위에 쌓인 눈더미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매우 각별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버지와의 옛날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서 회상하게 되면 내 보잘것 없는 인생이 무척 행복했던 삶이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아이들이 다녀간 허전함을 아버지와의 옛날 그 시절을 회상하는 추억으로 채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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