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57

뜻밖의 전화를 받고서......

오늘은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처제가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더니 종친회에서 조의금을 전하려 하니  내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순간, 참 일처리가 물러터지고 마무리가 흐지부지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랬다. 난처한 일은 모르는 척, 생색낼 일은 너무 요란스럽게 떠들던 사람들이었지. 그 일을 떠맡은 처제가 안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는 처가와 얽힌 일에는 늘 난감해 했었다. 장인이 몸져 누웠을 때, 1주일 마다 장을 봐서 행당동으로 찾아가곤 했던 아내는 돌아와서 늘 말이 없이 한 숨을 내 쉬곤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엔가는 난제가 쌓이면서 불화한 가족의 모습을 보게 된 만년의 장인의 초췌해진 모습이 안스러워 눈물을 쏟았었다. 그 상황에서 장인은 아내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을 한..

나의 이야기 2024.07.11

부모와 자식

요즘은 10시 전후에 잠이 들어 새벽에 잠이 깬다. 얼마전 까지는 그 동안 두어번 잠이 깨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중간에 깨는 일이 없다. 피곤함 때문인지 또는 수면 사이클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딸내미는 지난 6일 시골에 내려와 복분자와 불루베리 수확을 거들다가 지난 금요일 상경했다. 사위의 반찬이라도 챙겨주려니 불루베리 택배 배송이 없는 주말을 이용해 잠시 올라간 것이다.  오늘은 부모와 자식은 무엇인지 새벽에 일어나 생각하게 되었다. 보통 자식은 유년기에 절대적으로 부모에 의존해서 삶을 이어가면서  안정감과 자신이 사랑받고 존중 받는다는 사실을 통해서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다가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에 이를 때 쯤이면 부모를 관찰하면서 어른의 삶에 실망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나의 이야기 2024.06.17

죽음을 준비할 때.

지난 주말 동생의 장인이 이승을 하직하셨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신 우리의 부모님 세대이니 그 인생의 굴곡은 우리가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동생은 내개 그 사실을 바로 알리지 않았다. 나의 형편과 사정이 문상을 오갈 처지가 아니라고 판단한듯 하다. 거의 매일 퇴근 후에 안부 전화를 주고 받았는데 전화가 없어 의아했었다. 발인하기 전날 저녁에 늦게 사실을 문자로 알려왔고 나는 그 문자를 새벽에 확인했다. 동생 내외는 나름 고민을 하던 끝에 그리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문자로 장례를 무탈하게 치루기를 기원하고 따로 전화는 하지 않았다. 야단스럽게 자기의 한 일을 떠벌려야 직성이 시원한 사람들도 있겟지만, 나는 그냥 은근하게 서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묵직한 교감을 더 소중하게 여..

나의 이야기 2024.06.11

몰염치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어려움

염치(廉恥)라는 말은 체면과 부끄러움을 아는것을 말한다. 결국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지의 여부에 따라 사람의 평가와 값이 달라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염치는 개나 줘 버리고 적당한 처세와 간교한 말로 자신을 속이면서 사는게 지혜롭게 사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그 염치를 아는것은 이성적인 각성의 차원을 넘어선 인성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일본 사람들은 염치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심한 욕이라고도 한다.   내가 사는 이 시골에 나보다 20세가 많은 노인 회장이 계신다. 이 분은 대체로 사람들에게 그렇게 높은 명성이나 평판을 얻고 있지 못했다. 내가 직접 경험한 바로는 남들이 쉽게 말하듯이 성격이 괴팍한 노인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어려운 집에서 태어나 남의집 일을 해주면서 자기 ..

나의 이야기 2024.06.04

미생물을 받아 오면서...

예년 같으면 4월 부터 미생물을 받아와서 밭에 심은 작물에 물을 줄 때 타서 주었었다. 오늘은 농사일을 걱정하면서 미생물을 받아 왔다. 아마 4년전 쯤이었을까? 모든 초행길은 다 낯 설었지만 유독 시골길은 처음 갈 때는 싱숭생숭한 법이다. 아내와 함께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면서 10분 여를 트럭을 타고 가던 일이 떠올랐다. 농사일도 서툴고 과연 우리가 이곳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갖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둘이 꼭 붙어서 일을 함께 하면서 그런 불안과 근심을 이겨냈었다.  그 길을 오늘 가는데 울컥하는 격정에 차를 한 쪽에 세우고 한 참을 흐느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초행길의 생경함이 서로에게 주는 감정을 공감했던 감회가 감정의 빗장을 무너뜨린것이다. 아마, 3년 정도까지는 그런 감정으..

나의 이야기 2024.05.21

49재와 종교에 따른 사후 세계에 대한 소망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절에서 49일 째 천도재를 올렸다. 절에 다니던 어머니의 뜻에 따른 것이었으나 그 취지가 유족의 입장에서 거슬리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아내의 경우, 장모대에서 부터 기독교인이었던 관계로 절에서 치루는 49재를 올리지 못했다. 다만 미욱한 인간이 알지 못하는 인간 사후의 세계에 대한 갑갑함으로 딸내미와 둘이서 장지를 찾아서 마음속으로 명복을 빌었다.   그러고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는 참으로 판타지의 특성이 다분하여 기독교의 간명한 사후세계와는 구별되는 점이 인상적이다. 범신론에 가까운 종교관을 갖은 나로서는 현생을 살아가는 자의 죽음의 대비라는 점에서는 불교의 사후세계관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이 나라의 종교문화는 참으로 지구상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

나의 이야기 2024.05.20

39주년..

오늘은 결혼 39주년이 되는 날이다. 어제 딸 아이가 내려오면서 제 어미가 좋아하던 조각 케이크를 사가지고 왔다. 유난히 빵을 좋아했고 또 케이크류를 좋아했었다. 드러내고 좋고 나쁨을 말하지는 않는 셩격이었지만 워낙 입에 달게 느껴지는 케이크를 좋아한 사람이었기에 딸내미가 사오는 케이크를 나는 늘 아내에게 양보했었다. 물론 그래도 그것을 꼭 함께 나누어 먹자고 하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홍차를 마련해 주면서 너무 달아서 싫다고 했었다. 내가 우려낸 홍차와 케이크를 먹으면서 흐뭇해 하던 모습이 선하다.    오전에 딸내미와 함께 불루베리 하우스의 출입문에 새의 출입을 막을 망을 설치하고 고추를 심은 비닐하우스의 일부 작게 손상된 부분들을 보수용 테이프로 보강 한 후, 점심을 먹고 아내가 있는 곳에 다녀왔다. ..

나의 이야기 2024.05.18

45일이 지난 후...

45일을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이리저리 뒤엉켜 혼란스럽다. 대략 한 달여 정도의 기간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혼미한 시간이었다. 날벼락 같은 이별, 어리둥절한 상태에서의 장례, 유골의 안치를 둘러싼 해프닝... 아마도 그 사건이 내게 어떤 각성을 촉구한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배려라는 단어의 사용이 인간의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과 위선과 허세로 지혜로움을 드러내려는 인간에 대한 실망도 내 기세는 살리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자들과의 인연으로 중간에서 힘들었을 사람이 더욱 애처로웠다. 그래서 유골을 20여일간 끌어안고 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는 나의 슬픔을 떨쳐버리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버리려고 하거나 벗어나려고 하는 마음이 비겁한 자기 기만의 방편이리라. 어쩌면 운명을 거..

나의 이야기 2024.05.16

골절 부상

내 생애 처음 다리뼈가 부러져서 수술을 받고 깁스를 하는 일을 경험했다. 수술 후 2주 정도를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수술부의의 염증 및 수술 후 뼈의 접합상태를 관찰하게 되는데,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병원 신세를 져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참으로 기이한 경험을 한 셈이다. 12월 5일 비닐하우스 천정 부분의 손상된 부분을 수리하기 위해서 사다리에 올랐다가 사다리가 쓰려지면서 3m가 넘는 높이에서 사다리와 함께 쓰러지면서 오른발목이 골절이 되었는데, 6일 병원에 입원해서 붓기가 빠지기를 기다리면서 각종 검사를 받다가 12월 11일에 수술을 했다. 수술 후 경과가 무난하여 27일 실밥을 제거하고 통깁스를 한 후 오늘(12월 28일)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6년전에 시골에 이사오고 얼마되지 않아서 아..

나의 이야기 2023.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