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읍내에 나가서 고추 이식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왔다.
보온덥개(이불)와 부직포, 그리고 비닐과 활대등을 사왔는데, 모처럼 내가 선택한 시간에 내 맘대로 농자재상에 가서 물품을 사서 트럭에 싣고 올 수 있어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아내도 함께 동행했다. 둘이 승용차보다 시야각이 높은 트럭을 타고 농자재를 구입한 후에는 하나로 마트에 가서 간단하게 필요한 장도 보고왔다. 수동기어를 조작하는 트럭에 아내가 처음 타고 함께 운전연습하는 코스를 돌아볼 때, 아내는 집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면서 손에 쥐가 난다고 했었다, 낯선 낡은 트럭과 불안한 운전솜씨를 갖은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탄 긴장감에 손을 꼭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아내에게 그런 증상이 없는 것을 보니 그럭저럭 나의 수동기어와 클러치 조작이 큰 무리 없이 원만하게 적응이 되어가는듯 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물건을 내리다가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부직포는 폭이 240mm인데 비닐은 120mm인것이다. 분명히 부직포와 비닐을 같은 폭으로 달라고 했는데 의아해서 물건을 싣는 와중에 착오로 물건을 잘못 실었다고 여기고 전화를 해보니 농자재상 사장님이 아니라 사모님이 전화를 받았다. 이런 저런 사정을 이야기하니 물건을 바꾸어 가라고 한다. 그래서 다시 트럭을 타고 비닐을 바꾸러 갔다. 농자재상에 가서 비닐을 잘못 실으셔서 부득이 다시 바꾸러 왔다고 했다. 그랬는데 사장님의 표정이 참 난감하다는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한 참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더니 천천히 정신을 수습해서 말을 하는데, "비닐은 접혀 있어서 펴면 240mm가 되는 법인데......"
시골생활이 이렇다.
무엇이든 경험하지 못한것은 실수를 하게된다. 그것도 큰 것보다는 작은 것에서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필이면 그렇게 남의 일에 관심을 갖고 참견하기 좋아하던 동네분들도 내가 물건을 사서 돌아오던 시간에는 만나지 못했다. 만일 만났다면 설명을 듣고 읍내에 두번씩 오고가는 해프닝은 없었을 것이다.
물건을 내려놓고 나서 점심을 먹고 밖을 보니 바람이 세차게 불고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이런 날은 농부에게는 재량적인 휴가 선택권이 있다. 즉 지금 즉시 처리해야 할 일이 아니면 내일로 미루어도 좋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느긋하게 TV 뉴스를 보기도 하고 컴퓨터를 켜서 이런 저런 고추 농사관련 글들도 검색하면서 읽었다. 물론 그 와중에 컴퓨터에 내장된 CD드라이브를 통해서 베토벤의 후기 현악4중주곡들도 들었다. 원래 멀티 플레이를 못하는 내가 유일하게 가능한 멀티 플레이가 음악을 들으면서 무언가를 읽는 일이다. 바깥에서 찬 바람이 제법 부는 중에 따뜻한 방에서 창밖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지를 보면서 베토벤의 진지하고 묵직한 현악4중주곡을 듣는 기분은 참 묘하다. 뭐랄까, 외부와 단절된 나만의 아늑한 도피처에 은신한 그런 느낌과 유사한 감정이 든다. 그러면서 만일 내가 시골로 내려오지 않고 서울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지난 12월에 서울을 다녀오면서 느꼈던 점이지만 불과 1년이란 시간이지만 나는 아파트라는 공간이 무척 살기 불편하다는 느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부와 내부가 구분되지 않은 몽롱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답답함도 느꼈었다. 그리고 만일 서울에 있었다면 딱히 할 일이 없어 무료함을 지워버릴 다른 일을 궁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이 서울이란 대도시에서 무료함을 지워버리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꼭 돈이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답답해서 친구를 만나려 해도 차 한잔에 밥 한끼를 나누려면 돈이 들어가고 그런 친구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불필요한 호승심이 발동하여 이런 저런 물건(음반이나 책, 또는 사진기나 오디오 등등)에 대한 관심에 기울기도 한다. 시골은 일단 적당하게 유리된 호젓함으로 모든 것을 천천히 느리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는 점이 좋다. 그것이 다른 말로는 외로움이라고 표현될 수도있지만 나는 아마도 생래적으로 외로움 또는 고독에는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체질인듯 하다. 그래서 시골생활 적응이 그렇게 버겁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옛날 서울에서 청계천을 산책하다가 손에 들고 있던 사진기(아마도 1930년대에 만들어진 바르낙II D로 기억한다)로 촬영했던 천변에 앉아 책을 읽던 나이 적당하게 먹은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도 내 나이 즈음이었을 것이다. 한 낮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청계천변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 그 모습은 어찌보면 보기 좋은 모습으로 그려질 수도 있지만 현실속의 모습은 그보다는 어딘가 아련한 애잔함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사진의 톤도 다소 로우 키(low key)에 가까워진것 같다. 옛날에 스캔한 사진들 속에서 그 남자의 모습을 찾아내서 한 참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시골로 내려오길 참 잘했어'라고 몇 번을 되뇌었다.
마침 스캔 폴더를 찾아보니 내 수중에 있는 바르낙 기기의 사진이 있다. 요 바로 위 사진은 원래 충무로의 <우리카메라>의 판매용 사진이었다.
우리카메라 사장은 니켈 엘마를 해외에서 구입한 후 바디를 찾던 내게 이 바르낙을 선물했고, 나는 이 사진기를 흠잡을 곳 없는 실사용기로 만들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거래되는 금액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드는 수리비를 카메라 장인에게 지불했던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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