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농사일을 벌여 놓으면, 그 규모가 크건 작건 나름의 농사가 진척되는 과정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니 그 속사정을 모르는 서울 지인들은 농사가 얼마나 된다고 서울에 한 번 다녀가기가 그렇게 어렵냐고 성화를 하지만 이곳에서 나름대로 벌여놓은 농사일이 있는 처지에서는 차일 피일 상경일을 미루게 마련이다. 그러나 금년 12월 14일은 장모님의 3번째 기일이라 부득이 상경일을 맞추어 놓고 농사일을 정리했다. 늘상 하는 말이지만, 내가 하는 농사일, 시골일은 늘 속도가 더디고 그 과정이 번잡하다. 즉 익숙하게 몸에 익지 않은 일이기에 천천히 생각하고 이해가 되어야 일을 진행하는 내 성격상 일은 항상 한 발씩 더디고 그 진행과정은 오락가락하게 마련이다.
아무튼 12월 1일 직접 기른 배추와 무를 뽑아서 처제네와 함께 김장을 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농사일은 마무리가 된 셈이다. 물론 고추밭을 아직 깔끔하게 정리하지는 못한 부분이 있고, 또 밭에 옮겨 흙과 함께 섞어 두어야 할 볏짚 옮기기가 다 끝나지는 않았지만 그 일은 짬을 내서 천천히 하면 될 일이다. 그러니까 내년 1월 중순 고추씨를 선택할 때 까지는 농사의 주기상 공백기, 속칭 농한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지난 13일에는 상경해서 처가식구들과 장모 추도식에도 참가했다. 겸하여 상경한 김에 그간 못본 사람들도 두루 만나 보고 싶었지만 워낙 시간이 넉넉하지 못하여 몇 사람 보지는 못하고 내려왔다. 동서들과 어울려 4촌 큰 동서가 별장으로 사용하는 강릉 해변의 아파트에서 이틀을 보낸것이 유일하게 나름 시간을 낸 여유있는 짬이었다.
큰 처남도 그렇고 또 친구들도 그렇지만 내가 시골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서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약간의 걱정과 연민이 없을 수 없는것 같다. 우리는 나름 행복한 1년을 보냈다고 믿지만 그것을 체감하지 못한 서울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모습에 선뜻 공감이 가지 않을 것이니 그 걱정을 내가 덜어줄 마땅한 방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세상사가 그렇고 인생사가 그렇듯이 모든 불확실한 미래의 일들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부분이 대부분이 아니겟는가. 내가 이곳에서 욕심없이 잘 살아가고 있노라면 그들의 걱정도 자연 사라질것으로 믿는다. 그러면서 이번 상경에서 스쳐가는 느낌은, 내가 살면서 함께한 사람들은 그 삶의 모습이 어떻든 또 그들이 크게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인지를 떠나서 다들 선량한 사람들이라는 것인데, 그것이 그 무엇보다 가슴에 온기로 전해져서 훈훈한 마음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보다 더 소중한 느낌이 어디 있을 수 있겠는가?
내년에는 고추 농사가 조금 늘어날 것이고 뽕나무에서 나오는 오디도 좀 더 신경을 쓸 수 있을것 같다. 그외 50평 텃밭 비닐 하우스며 주변 짜투리 텃밭에서도 좀 더 짜임새있는 농사를 해보려 한다. 역시 농사로 큰 돈을 벌겠다는 욕심도 없고 그럴 포부도 없다, 그져 내가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자급하고 여분의 것들을 서울에 있는 그들에게 올려 주어 약간의 용돈이나 충당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 내 농사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일상에 필요한 것들이 의외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소심해서 이것 저것 많은 것들을 심고 기르는 것을 주저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던 일을 좀 더 늘여서 하면 가능한 수준에서 농사 규모를 아주 조금 더 늘려보면서 내 능력의 한계치를 내년에는 조금씩 올려보고 싶어진다.
사진기를 따로 챙겨가지 않은 탓에 이번 서울 나들이에서는 딱히 사진으로 남긴 것은 인상적인것이 없다. 아쉬운대로 스마트폰에 내장된 사진기로 그 답답함을 달랜 사진을 몇 장 보면서 그 따스한 시간을 회상하고 내년의 더 발전된 내 시골살이를 다짐해 본다. 그리고 강릉에 가게되면 꼭 들르게 되는 커피집이 있다. 테라로사인데, 커피를 좋아하거나 관심있는 사람이면 아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마시는 한 잔의 드립 커피는 늘 기분이 좋다. 커피집에서 처형 처제, 그리고 아내와 함께 맞은편에서 남자들이 나란히 앉아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잠시 망중한을 즐기던 사진이 유독 눈에 자꾸 남는다. 아마도 우리 또래가 아내와 함께 특별히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따로 커피집을 찾은 경험이 그렇게 흔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인물 사진은 함부로 퍼서 나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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