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순환에 따라 기상상태가 일정하게 변화한다면 농사짓는 일이 참 편리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올 겨울은 비교적 따뜻한 겨울이었다. 겨울이 춥지 않고 따뜻하다고 하면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나쁠것이 없지만 정작 농사와 관련해서는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고 다음 봄에 정상적인 농사를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이곳에 이사와서 첫 해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혹독한 겨울을 맞았던 기억이 있지만, 작년에는 그보다 눈이 적게 왔고 금년 겨울은 아예 눈이 없었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던 날씨가 무슨 조화를 만났는지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코앞인데 폭설을 퍼부었다.
눈은 그냥 겨울에 비를 대신해서 내리는 강수 현상의 일종이라기엔 무언가 다른 특징이 있다. 그러니까 올 겨울에도 눈은 오지 않았지만 비는 자주 내렸다. 그런데 비와 눈은 대지와 작물에 끼치는 영향이 다른것 같다. 한 겨울을 나는 작물은 적당한 강설이 있어야 그 생장이 정상적인 법이다. 그러니까 더러는 눈이 쌓여서 작물을 포근하게 덮어 주었다가 그 눈이 서서히 녹으면서 수분을 골고루 대지에 퍼뜨리는 것은 비가 직접 떨어지는것과는 다른 점이 있다. 마늘이나 양파, 그리고 보리와 같이 겨울을 나는 작물들은 그래서 적당한 추위와 적당한 강설량이 이어져야 작물도 건강하게 그 본래의 정상적인 성장을 하는 법인데 올 겨울을 그런면에서는 겨울 작물에게 별로 좋은 기후는 아니었다.
지난 일요일부터 2일간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그래서 그 눈을 치우다가 문득 마늘밭에 포근하고 소담스럽게 쌓인 눈을 보고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싶어졌다. 비록 매우 늦었지만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은 대기에서 쏟아져 내린 눈은 아쉬운대로 겨울을 나는 작물들에게 무언가 결핍되었던 것이 조금이나마 채워진것 같은 안도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텃밭의 한쪽에 심은 마늘을 지난해에는 그런대로 가족들이 나누어서 먹을 정도는 수확이 되었었다. 금년에도 작년의 경우를 그리면서 마늘을 조금 더 심었는데 작년 만큼의 마늘 수확이 가능할지는 모를 일이다. 아직은 많이 어설프지만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 작으나마 농사를 짓다보니 계절의 변화와 기후의 변화에 제법 민감해진다. 그러면서 사람이 할 일과 자연이 할 일이 구분이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되고, 그런 농사일에 최선은 있어도 장담할 확신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눈보라까지 몰아쳐서 이식해서 이제 막 성장이 시작된 고추모종이 염려되기도 했지만 오늘은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이기에 고추모판을 덮었던 방한 이불과 부직포를 걷어내고 고추모를 보니 떡잎외에 본엽이 제법 크게 자라고 있었고 고추모도 크기가 제법 자란 모습이었다. 지난 금요일 서울에 올라가면서 물을 주었다가 계속 흐리고 눈이 와서 일요일 귀가해서 주려던 물을 주지 않고 있다가 오늘은 모판에 물을 주었다. 고추모를 이식한 포트상의 상토의 수분이 말라가고 있었는데 물을 주고 나서 보니 고추모가 더 기세가 오른듯 했다. 이런 작은 변화에 기분이 좋아지는것이 농사짓는 사람의 마음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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