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에 더운것은 시골과 도시가 다를것이 없다.
그런데 그 더위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사실 도시의 여름 더위는 냉방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느낌도 덧붙일 여지가 없다. 간혹 골목길을 걷다가 에어콘 실외기가 뿜어내는 열기를 스쳐 지나갈 때는 그 짜증스러움과 함께 난감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어느곳이고 사람이 있는 곳에는 냉방기의 인위적인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더러는 너무 냉기가 심해서 몸을 오싹 떨어보게도 되고, 또 냉기가 부족한 곳에 가면 콧등에서 부터 배어나오는 땀에 마음의 평온이 흔들린다. 결국 집에 돌아가서 샤워를 하고 가장 편안한 복장으로 있을 때에만 평온함을 음미할 겨를이 생기는 것이다.
시골의 더위도 덥다는 것은 같지만 여려겹의 느낌이 섞여있는것 같다. 그러니까 오늘 같이 더위가 2~3일 이어진 날은 온 동네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하다. 이런 더위에는 농부들도 일을 쉬고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 망외의 느긋한 휴식에 모처럼 육신을 내 던지고 한가로운 낮잠을 청해 볼 수도 있는 여유가 더위와 함께 찾아온다. 요즘은 월드컵 때문에 잠을 설치는 경우가 많아서 때로 점심 식사 후에는 나른한 감이 있었는데, 이렇게 온동네가 조용한 김에 모처럼 낮잠을 청해 보는데 정신은 이내 그냥 말똥말똥해진다. 이런 더위에 어제는 고추를 딴다고 아내와 함께 비닐 하우스에서 나름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아랫집 아주머니가 고함을 치면서 달려온다. "이 더위에 염병할일 있다고 고추를 따고 있나? 빨리 접어...." 그 커다란 목소리에는 걱정이 은근하게 담겨있다. 더운날 비지땀을 흘리고나면 유난히 목이 타니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 물을 그리 많이 마시지 않던 나와 아내도 시골의 더위를 견디기 위해서는 큰 패트병으로 한 병정도의 물은 마셔야 한다. 그리고 젖은 옷을 벗어버리고 찬물에 샤워를 하면 그 상쾌함은 어디에 비길 곳이 없다. 아내와 둘이 하는 일이니 따로 참을 먹을 시간이 정해진것은 없다. 그냥 일하다가 목이 마르고 힘들면 바로 그늘진 평상에 앉아 수박을 먹거나 참외를 먹는다. 그 맛이 서울 마트에서 파는 과일맛과는 비교가 힘들다. 수박은 늘 쪼개서 보면 색깔은 발그레하지만 특별한 맛이 없었던것 같다. 참외도 왜 그렇게 속이 물컹물컹하던지.... 여기서 먹는 수박과 참외는 아삭아삭한 맛이 일품이다. 지금껏 먹어온 수박과 참외는 이런 맛과 식감이 아니었다. 내년에도 텃밭으로 쓰는 50평 하우스에는 수박과 참외를 계속 심어서 한 여름 간식으로 삼아야 하겠다.
더러 손님이 찾아오면 아낌없이 에어컨을 틀어서 냉기를 함께 나누면서 시원함을 음미한다. 그 시원함이 서울의 커피숍이나 백화점 또는 집 아파트 거실에서의 시원함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좀 더 또렷한 시원함이 느껴진다. 물론 에어컨은 도시나 시골을 막론하고 전기요금 폭탄의 주범이므로 아내는 에어컨 트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태양광 발전이 되는 상황에서는 서울에서 보다 더 자주 더 오래 필요하면 에어컨을 틀고 더위를 식힐 수도 있다. 물론 눈치 빠르고 재주있는 시골 양반들 중에는 농업용 전기를 요령껏 에어컨 전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는데, 나는 아직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심심하면 한번씩 찾아오는 이장과 함께 시원한 맥주에 소주를 약간 타서 마시는 소맥도 은근한 즐거움의 하나다. 어제는 점심때쯤 이장에게 전화가 왔었다. 더운데 일하지 말고 마을회관으로 올라와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잠시 일을 쉬면서 마시는 한 잔의 술은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술이 아니라 갈증을 풀고 고단함을 진정시키는 에너지 음료와 같다.
오늘은 온 동네가 적막해서 나도 가만히 거실에 누워보니 앞뒤로 스치는 바람이 제법 시원히기도 하다. 낮잠을 한 잠 청해보는데 잠이 올듯말듯 하다가 정신이 맑아져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아래쪽 정자를 바라보니 말동무할 양반도 보이지 않아서 혼자 건조장에 있는 고추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겹쳐진 놈들을 펼치고 널린 고추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나니 다시 땀이 솟아난다. 그런데 그런 느낌이 싫지만은 않다. 무언가 스스로 찾아서 필요한 일을 하면서 흘리는 땀이라 그럴것이리라.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마지 못해 하면서 더위에 땀을 흘린다면 그 기분이 좋을리 없을 것이다. 서울에서는 어떠했는가? 그냥 땀이 솓아나기를 무서워하면서 그늘진 곳이나 서늘한 냉기만 찾아다니지 않았던가.... 적막한 분위기의 동네 사진을 한 장 찍어 보고 모처럼의 망중한속에서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고 얼음을 한 컵 담아 냉커피를 만들어 마셔본다. 그리고는 이렇게 여유롭게 불로그도 다시 한번 열어보고 객적은 소리도 몇 마디 늘어놓아본다. 시골의 여름, 그리고 더위는 일상의 여백과 같은 한가로움을 동반한다. 느긋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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