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30일 이사짐을 싸서 이곳으로 내려왔으니 오늘까지 시골살이 80일 째가 된다.
원래 성격이 날짜를 곰곰하게 기억하거나 일수를 계산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시골에 오니 그것도 된다.
지난 주에는 고창에 아주 많은 눈이 내렸다.
거의 내 무릅에 차오를 정도의 눈이 3일에 걸쳐 왔으니 말하자면 <폭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집은 약간의 경사기 있는 곳이고 두어집 아래까지의 길이 20여 미터 남짓인데 그곳에 쌓인 눈을 치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치우고 나면 다시 내리고 그러면 또 나가서 치우고... 무릅과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뻐근한것이 제법 고단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군대에서 겨울에 눈치운 기억이 씁쓸하게 각인되어 있다고들 하더만 나는 눈 치우는데 고단하게 노력한 기억은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아주 독하게 눈치우는 일을 경험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옆집 아주머니는 겨울 추위를 피할겸 서울에 병원나들이를 가셨는데 그 집의 눈이 그대로 쌓인게 눈에 밟혔다. 도둑이 있다는 말은 동네에서 듣지 못했지만 왠지 그 빈집의 모습이 스산해 보여 그집 마당까지 이어진 통로를 굳이 눈을 치워 만들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이 편안했고, 앞집의 아주머니는 새로 온 사람이 눈을 치워주어 길 다니기 편해 참 좋다고 치사를 하신다. 칠순을 넘긴 분들이 혼자 사는 집들이니 그 집 앞의 눈은 그냥 두고 발길을 돌리기 힘들다. 그리고는 다시 마을 정자앞에서 쓰레기 수거장까지 좁은 통로나마 치워서 만들어야 속이 시원했다. 내가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젋은 축에 속하니 마땅히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이 마을 이웃들과 제법 안면이 트여서 이젠 서먹하지 않게 오가면서 인사를 나누고 말을 나눌 수 있다. 뽕나무밭 청소에 도움을 준 한 마디도 그냥 예사롭지 않은 고마움으로 느껴진다. 이제 고추농사를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해 보려는데 그것도 마을 이웃 선배들의 지도와 조언, 그리고 도움이 이어진다. 이런 이웃이 생겼다는것을 생각하니 조금 신기한 생각도 든다. 과거 서울 생활에서 나는 마주한 앞집의 사람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눌 정도였을 뿐 서로간에 집을 오가면서 정을 나눌 겨를이 없었다. 나도 그랬고 이웃도 그랬듯이 늘 무언가 바쁘고 그래서 서둘러서 시간을 타고 살아가는 그런 빠듯한 삶을 살아왔는데, 이곳에서의 삶은 그런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내 일거수 일투족이 다른 이들이 무관심한듯한 무심한 태도속에서도 다 관찰이 되는것 같다. 아내와 함께 목욕탕을 다녀왓도 그냥 지나는 말로 어디다녀왔는가?고 묻는다. 처음에는 그게 어색하고 불편할것 같았는데 일종의 관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보는 사람들의 안부는 그래서 확인이 되는것이 아니겠는가?
이장은 직접 자신의 트랙터를 가지고 와서 파농한 뽕나무밭의 뿌리를 캐주었고, 마을 선배들은 뽕밭 청소와 전지에 대한 조언도 해주었다. 어떤 힘쓰는 일이 끝나고 나면 서로 마주앉아 소박한 소주잔을 나누면서 고단함을 푸는 맛도 예전 도시생활의 회식분위기와는 다른 편안함이 있다. 못하는 술이지만 그래서 마을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피하지 않는다. 며칠전에는 꿩고기를 함께 먹자고 마을회관으로 오라고 하는데, 마침 아내가 병원에 가야하는 날이 었다. 눈도 제법 많이 온 날이었다. 눈길을 헤치고 병원들 들렀다가 함께 입원했던 노인의 안부가 궁금해 문병을 다녀오고 하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그래서 과일과 소주 한 박스를 사서 마을회관애 들렀더니 마을 주민들은 그제까지 내가 오기를 기다린듯 느긋하게 술 잔을 돌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판소리 사설같은 리듬과 억양이 느껴지는 사투리도 낯설지만 싫지 않다. 시골생활. 그런대로 아직까지는 잘 적응을 해가는것 같다. 물론 12월에 위기는 있었다. 아내가 넘어져 요추압박골절로 고생했다. 병원에 3주정도를 입원했고, 나는 아내의 병수발을 하면서 집과 병원을 오갔는데 그 때 온전하게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이 아주 번거롭고 제법 힘이 들어가면서 신경도 많이 쓰이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덕(?)에 아내의 골밀도가 떨어져서 골다공증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것을 확인한것은 불행에 끼워진 다행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돌이켜 본 시골생활 80일, 괜찮다.
서욿에서 살 때 보다 살결이 더 좋아지는 아내를 보는 것도 좋고, 젊은 시절 아끼던 허리띠를 배가 나와 쓸 수 없었는데 이곳에 와서 다시 쓸 수 있게 된것도 좋다. 뭔가 할 일이 없을 때 멍하니 시골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는것도 좋다. 해질녁에 황혼이 어른거리는 무렵에 들었던 호렌슈타인의 말러의 5번 교향곡도 참 좋았다. 아직 심리적인 안정감이 정착하지 않아 책을 읽지는 못하지만 조금만 더 지나 100일쯤이 경과하면 책읽기도 가능해질것 같다. 왜냐고? 왠지 머리속이 궁금증이나 호기심으로 근질거리는 그런 느낌... 난, 그런 느낌이 독서를 유인하는 징조임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이제는 소소한 행복을 음미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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