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낯선 사람을 사귀어 가는 과정에서 비교적 심한 심리적 통증을 느끼는 스타일이다.
그게 어린 시절 유난히 병치레를 많이하다 보니 사회성의 발달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것 같은데, 아무튼 나는 사람을 사귀는데 어려움을 느끼는게 사실이다. 며칠 전에는 우리보다 8년 먼저 이웃 동네로 이사를 온 내외분과 함께 전남 영광까지 가서 점심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분들은 경기도 안산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우리집에서 마주 보이는 이웃 마을의 산기슭에 자리 잡은 경사지에 제법 넓직한 불루베리 밭을 조성해 놓으셨다. 그곳에서 보는 정경은 아주 시원하고 아름답다. 이렇게 지나는 사람이 보기에 좋은 곳이 실제로 그것을 만든 사람의 땀 흘린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란 것 정도는 알 수 있기에 그 분들이 그간 들인 노고에 대해서 깊은 존경심을 감출 수 없다.
이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늘 아주 천천히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나는 행동이 남들 보다 좀 느린 편이다. 당연히 어떤 내 판단을 표시하는 것도 좀 더디고 느린 편이다. 앞에서 말한 사람 사귀기의 어려움은 이런 나의 특징에서 비롯되는 면이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낯선 사람과도 쉽게 친숙한 모습을 보이고 단시간내에 허물없는 사이로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이 있다. 한편으로는 부러운 점이지만 내가 따라할 바는 못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즉 나는 낯선 사람을 보면 우선 그 사람도 내가 낯설어서 불편할지 모르니까 내 생각과 느낌을 가능하면 투명하게 드러내고 상대방에 대한 나의 이해도 그렇게 점차 넓어지기를 바라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세상사는, 그리고 인간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즉 내 속을 드러내지 않고 남의 속을 먼저 알아보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또 그런 처신이 현명한 처신으로 통용되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도 세상에 섞여 살아오면서 점차 그런 점을 이해하게는 되었는데, 천성 때문인지 그 아는 것을 내 삶에서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앞으로도 노력은 하겠지만 그렇게는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늘 타인에게 좀 손해를 보는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것이 일상화 되어서인지 크게 상심하지는 않고, 대신 사람을 사귀는데 좀 더 신중해지려고 하고 또 그 범위를 애써 넓히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그냥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적정한 사람들과의 안정적인 관계의 유지에 나는 더 편안함을 느낀다.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대부분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뒤에 그 모습의 차이에서 일정한 실망과 상실감을 맛보는게 인간사의 상례가 아닌가 한다. 그러면서 내가 경험한 나름의 작은 지혜는 사람은 변하는 사람이 있고,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인간관계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세월에 따라 나이를 먹어가면서 변화가 있는 사람이 늘 인간관계의 결과는 더 좋더라는 것이다. 즉,인간의 성장은 자신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과 범위가 넓어져야만 가능한데,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그런 발전의 선순환의 궤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이해와 타인에 대한 이해 모두가 어느 시점에 고착되어서 의식이 화석화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사람이 한결같기를 바란다. 그것은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이지만, 그 말에는 불편한 진실 또는 외면한 진실이 은폐되어 있게 마련이다. 과연 무엇이 한결같아야 하는 것일까? 결국,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상대방의 좋은 모습이 늘 변화가 없이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자신의 모습도 상대방에게 그렇게 변함 없이 유지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도 늘 내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실망감을 느낄 때, 그 감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늘 나 자신에 대한 냉철하고 혹독한 자기 검열의 과정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대부분의 신중하지 못하고 탐욕스러운 시림들은 그런 경우, 대체로 자기 중심으로 모든 상황을 해석하고 심지어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이게 사실은 인간관계를 비틀어 버리는 고질적인 인간의 나쁜 습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이해관계의 계산이 빠르고 예의가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에 늘 심한 어려움을 겪었고 결과는 내 스스로 먼저 상대방을 포기하는 쪽으로 귀결되었던것 같다. 그래서 새롭게 사람을 사귀는 것은 늘 조심스럽다.
새로 알게된 이웃 선배 내외와의 관계가 좋은 관계, 서로가 편안한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