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2, 목포 나들이

sunis 2022. 10. 18. 20:59

고향이 서울인 사람이 특별한 인연이 없다면 목포를 자주 찾을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때 장아무개라는 친구 녀석과 겨울방학에 갑자기 제주도를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밤차를 타고 새벽에 내려 배를 기다린 곳이 목포였다. 내용적으로는 고등학교 2학년 짜리가 부모의 허락도 받지 않고 야반 도주를 한 것이니 가출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가출은 크게 위험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해피앤딩으로 제주여행을 다녀온것으로 끝났다. 장아무개의 모친은 자기 아들이 나와 함께 제주도에 갔다는 사실을 알고는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잘 놀다 오라고 하실 정도였으니.... 아마도 그 때 나는 그래도 문제적 아이로 보이지는 않았던것 같다.

 

그러다가 월급쟁이 시절, 출장으로 목포를 다녀간 사실이 있었다. 서른 언저리의 나이에 목포교도소에서 발생한 사고와 관련한 교도관의 징계사건과 관련한 조사에서 관련된 용어들이 매우 생소해서 머리속에 상황이 정리되지 않았기에 그 때 처음 교도소를 현장 방문한 사실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그 독한 흑산도 홍어의 참맛을 짜릿하게 경험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후 내가 다시 목포를 찾을 일이 없었다. 아니 이곳으로 이사온 후 동네 사람들과 함께 목포까지 밥을 먹으로 가서 아구찜을 잘한다는 집에서 밥과 술을 함께 먹은 기억이 있다. 손아무개라는 여성 정치인이 목포를 갑자기 핫플레이스로 만든 점이 내가 목포를 다시 찾는데 중요한 반작용을 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지난 일요일에 특별한 일이 없기에 심심해 하는 아내와 함께 목포를 다녀오기로 했다.

내가 나이를 먹은 것인지, 수십년만에 찾은 곳에서 별로 색다른 감흥을 느낄 수는 없었다. 뭐랄까, 요즘은 전국의 모든 도시가 대략 비슷비슷하게 개성이 없는 모습을 공유하기 때문인것 같다. 손아무개씨로 인해서 유명해진 목포의 구시가지 골목도 마치 무슨 영화 세트장을 보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월이 만들어 놓은 곰삭은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는 무언가 억지로 꾸민것 같은 구시가지의 모습이 전주의 한옥마을이나 서울의 인사동, 북촌길에서 느끼는 분위기와 별반 다름이 없는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감동에 매우 야박한 감성을 갖게 된 것일까?

 

나는 손아무개와 같은 천박한 감성을 가진 예술애호가를 자처하는 사람의 손길과 입김이 작용한 면도 없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오래된 것들이 세월과 함께 그 존재감을 스스로 유지하는것이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 부가가치를 높이겠다는 동기가 개입하면 늘 자연스러운 세월의 이끼는 사라지고 돈을 유혹하는 치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건 목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그냥 두었으면 더 좋았을 것들이 그래서 하나씩 사라져 간다.   

 

 

거리를 다니면서 사진을 찍다 보니 문득 불필요한 일이라는 느낌이 스쳤다.

그러던 중 내눈에 들어온 것은 남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을 벨로체 피아노 전문점과, 소라사진관이라는 낡은 점포였다. 한 곳은 벨로체(Veloce)라는 너무 과하게 멋을 부린 상호가 인상적이었고, 사진관은 예전에는 서울의 골목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는것 같아서 옛친구를 오랜만에 만난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은 요즘 어느 곳이나 가면 흔하게 보이는 이미지의 식당인데, 이곳은 <목포라면-홍어라면>이라는 상호와 메뉴가 매우 이색적인 식당이 보여서 사진을 남겼다.

 

다음에는 식사시간에 맞추어 가서 홍어라면을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다.

손아무개로 인해서 유명세를 띤 창성장이라는 곳은 길에서 좀 더 들어간 샛골목에 있는데 그냥 무신경하게 스쳐갔다. 목포역에서 목포항 여객터미널까지를 둘러보면서 세상의 변화와 그 변화에 심사가 불편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튼 목포를 다녀오면서 다음에는 꼭 아내와 그 유명한 민어횟집을 다녀오리라 다짐했다. 

 

지난 일요일(10월 16일) 목포를 다녀와서 스마트폰에 담긴 사진들을 편집했는데, 마침 카카오가 사고를 내는 바람에 포스팅도 아울러 오늘 저녁에야 가능했다. 요즘음 무언가 세상이 좀 제대로 아귀가 안맞은 상태로 돌아가는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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