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처제가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더니 종친회에서 조의금을 전하려 하니
내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순간, 참 일처리가 물러터지고 마무리가 흐지부지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랬다. 난처한 일은 모르는 척, 생색낼 일은 너무 요란스럽게 떠들던 사람들이었지.
그 일을 떠맡은 처제가 안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는 처가와 얽힌 일에는 늘 난감해 했었다.
장인이 몸져 누웠을 때, 1주일 마다 장을 봐서 행당동으로 찾아가곤 했던 아내는
돌아와서 늘 말이 없이 한 숨을 내 쉬곤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엔가는
난제가 쌓이면서 불화한 가족의 모습을 보게 된
만년의 장인의 초췌해진 모습이 안스러워 눈물을 쏟았었다.
그 상황에서 장인은 아내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을 한 장 달라고 했었단다.
인생의 국면에는 힘들고 막막한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국면을 맞는 모습에서 사람의 개성과 특징이 드러나는 법이다.
아내는 그런 경우 내게서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놀라곤 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서 난국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내 모습에서
아내는 천하태평한 나의 일상적인 모습과는 다른 나를 발견하고 놀랐었다.
결국, 그것이 어떤 난관에 빠져도 나를 믿는 아내의 믿음의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 아내의 형제들과는 인연이 끊어진 것을 실감한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남은 생을 살 것이고
나는 나의 방식으로 나의 남은 생을 살 것이니
그 중간에 존재하던 아내가 이 세상에 없는 지금,
그들과 내가 굳이 얽히고 이어질 이유도 사라진 것이다.
이제는 더는 전화를 주고 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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