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동생의 장인이 이승을 하직하셨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신 우리의 부모님 세대이니 그 인생의 굴곡은
우리가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동생은 내개 그 사실을 바로 알리지 않았다.
나의 형편과 사정이 문상을 오갈 처지가 아니라고 판단한듯 하다.
거의 매일 퇴근 후에 안부 전화를 주고 받았는데 전화가 없어 의아했었다.
발인하기 전날 저녁에 늦게 사실을 문자로 알려왔고 나는 그 문자를 새벽에 확인했다.
동생 내외는 나름 고민을 하던 끝에 그리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문자로 장례를 무탈하게 치루기를 기원하고 따로 전화는 하지 않았다.
야단스럽게 자기의 한 일을 떠벌려야 직성이 시원한 사람들도 있겟지만,
나는 그냥 은근하게 서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묵직한 교감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사돈 어른을 현충원에 안장해드렸다고 하니 아마도 6.25 참전을 하셨을 것이다.
이렇게 다사다난했을 우리의 부모 세대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제 죽음은 우리가 정면으로 마주한 피할 수 없는 과제(?)라는 생각이 더욱 절실하게 든다.
사람에 따라서는 100세 시대를 산다면서 노년의 즐거운 삶을 희구하기도 하지만,
나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두려움 없이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생애에 쌓은 죄업이 적지 않고,
무수한 오류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것이 사실이라면,
깊은 회오의 마음으로 참회와 반성의 시간을 갖고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 내가 당한 개인적인 어려운 상황은 그런면에서 많은 생각을 정리하게 한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좋은 아들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도 없고,
부로모서 자식에게 인생의 모범을 보였다고 할 수도 없는 처지고 보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끝없는 과오와 실패를 통해
부단히 인간의 부족함과 인간사의 덧없음을 깨우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자식으로서 내 아버님을 존경할 수 있었다는 점과,
내 어머님의 기구한 인생역정에 연민의 정을 느끼며 회한의 눈물을 남몰래 흠친 점,
그리고 언제나 믿고 의지하며 사랑했던 아내와 한 평생을 살았다는 점이다.
아울러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가 아비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을 확인한 점이
한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남은 인생은, 비록 보잘것 없는 삶이지만
하나라도 더 깨우치고 절실하게 느끼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다만 한 톨의 덕이라도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소망으로 마음을 채우려 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대범하게 포기할 줄 알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성패를 떠나 바꾸려고 노력하는 그런 용기있는 삶을 살고 싶다.
죽음은 필멸의 존재인 인간에게 늘 그림자 같은 것이 아니던가?
참회하고 감사하며, 용기있는 삶을 살면서 죽음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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