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이란 음악가는 내가 그리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이 사람의 음악은 듣는 즉시 달콤하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매력이 있으나 듣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 다시 듣고 싶은 여운이 남는 음악은 별로 아닌듯한 느낌이 든다. 이건 나만의 생각은 아닌듯 하다. 멘델스존의 생존시에 영국을 방문해서는 매우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그의 사후의 인기는 시간이 가면서 떨어진것 같다. 그리고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음악가로서 모짜르트와 비교하면 멘델스존의 음악이 왜 여운이 길게 남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소위 부루주아라는 말은 멘델스존 정도의 재력이 있는 집안에 해당하는 말일텐데, 부족함이 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었던 멘델스존과 늘 시대와 불화하면서 고단하게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한 모짜르트가 같을 수 없다.
이런 멘델스존의 음악 중 내가 그래도 관심을 지속하고 있는 곡이 있다면 피아노를 위한 무언가집이다. 말이 없는 노래라는 것이 어쩌면 형용 모순이기도 한데, 멘델스존은 피아노가 노래하는 가사가 없는 가곡을 48곡을 만들었다. 이것은 어쩌면 피아노를 잘 다루는 사람이 혼자 앉아서 느끼고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건반을 누르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될것 같다. 그야말로 절박할것도 치열할 것도 없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즉흥적이면서 도락적인 음악이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이 무언가들은 듣는 사람도 역시 그렇게 편안하게 부담없이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멘델스존 음악중에서 가장 생명력이 강한 요인이 아닐까 싶다.
오래전부터 이 곡의 결정반으로 발터 기제킹이 남긴 녹음이 언급되었다.
나도 그 말을 기억했기에 어렵게 그 귀한 LP까지 찾아 다니다가 결국 영국에서 프레스한 미국 엔젤반을 구하기까지 했는데, 모너럴 녹음(1956)인 것은 그러려니 한다지만 LP에서 함께 듣게 되는 스크레치로 인한 잡음은 모닥불의 수준을 넘어 장작불을 태우는 불가마 앞에 있는 느낌을 줄 정도로 심한 부분까지 있어서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는 음반이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서 명성을 유지하는데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다는 것이 나의 믿음인지라. 또 쓸데없는 호기심을 발동시켜서 기제킹이 선별해서 녹음한 음반과 같이 다른 연주 CD를 편집해서 들어보았다. 결론적으로 48곡의 무언가를 한곡씩 꼼꼼하게 듣는 짓이 미련한 짓이라는 것을 기제킹이 이미 그의 발췌곡 17곡 녹음에서 예고했음에도 나는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전곡을 찾아서 헤매면서 이 곡의 가치와 명성을 공감해 보려고 발버둥 쳤던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고생을 사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법.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음반은 그리그의 서정 소품집이 아닐까 싶다. 전곡(66곡)반 보다 발췌반이 많고, 전곡반 보다 발췌반 중에 더 유명한 음반이 많은 것, 그리고 실제 음악적 소재는 다르지만 그 표현 방식은 매우 유사하다. 아울러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소품집 "사계(Die Jahreszeiten)" 가 유사한 느낌이 들었던것 같다. 이 작품이 차이코프스키의 작품 중에 높은 평가나 대중적인 인기가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지만, 내가 거부감이 없이 듣는 거의 유일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교향곡 6번을 비롯해서 차이코프스키적인 음악은 내가 좀 많이 거북하게 느끼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미련한 짓이라도 하다가 우연히 얻어 걸리는 가외의 소득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발터 기제킹의 무언가는 확실히 요즘의 좋은 음질의 녹음에서 느끼지 못할 흡인력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곡 녹음의 CD로는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리비아 레프, 마리-카트린느 지로, 아미르 카츠 등의 연주 녹음을 비교했는데, 그중에서 기제킹의 명성에 필적할 감응도를 확인시켜준 것은 에센바흐의 연주 녹음이었다는 것이다. 역시 쓸데 없는 욕심이지만 에센바흐의 무언가집은 LP로 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일부를 발췌한 녹음으로는 1976년 존 오코너가 13곡을 녹음한 데논반이 느낌이 좋았다. 그러면서 좋은 연주, 아니 감동적인 연주는 현란한 기술이나 강렬한 대비를 통한 자극도가 높은 표현이 아니라 더러는 힘을 빼고 나즈막하게 속삭이는 듯한 연주일 경우가 더 많더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고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은 게시물에 쓸 사진을 직접 찍어서 편집하는것도 게을러져서 구글링을 해서 발견되는 사진은 그냥 활용하고, 그외 찾지 못한 사진만 직접 찍어서 편집 후에 올리게 된다. 사람이 이렇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쉽고 편한것을 찾는 게으른 성향은 어쩌면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한 때 필름을 현상해서 그 필름을 스캔 한 후에 웹상에 게시하는 짓을 제법 신경써서 했었는데, 그 때는 필름에 기록되지 않은 사진은 거들떠 보지도 않더니 언제부턴가는 디지털 사진기로 찍은 사진을, 또 언제부턴가는 그냥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써먹더니, 이제는 그것 조차도 귀찮은가 보다.
책상 한 켠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필름 스캐너는 작동이나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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