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끼고..

[음반] Bach, St.Matthew Passion BWV 244

sunis 2022. 6. 13. 21:35

 

인류 음악사 최고의 작품이라는 말까지 있는 곡이다. 

음악을 들어오면서 늘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성악곡의 접근에 어려움을 느겼었는데, 시간이 많아지면서 오페라를 나름 체계적으로 듣기 시작한 것이 20여년 전이었고, 그와 함께 바흐의 마태수난곡도 주의깊게 듣게 되었던것 같다. 물론 어린 시절, 곡의 명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접근한적은 있었지만 그 감동은 감각적인 경이로움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었다. 

 

내가 처음 구입한 이 곡의 음반은 클렘페러의 EMI반(1961년 녹음)이었다. 그러나 독일어를 모르는 내가 3시간 30분이 넘은 연주를 다 소화하는 것은 벅찬일이었다. 곡이 성경 내용(마태복음 26장, 27장)을 중심으로한 복음사가와 예수의 레치타티브(서창,敍唱)로 골격을 유지하면서 세부적인 내용을 합창, 코랄(찬송가)외에 아리아 등으로 채워나가는 서사적 종교극의 성격을 띠는 오라토리오이기에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이해와 감상이 불가능했다. 물론 오페라를 대본을 읽지 않고 노래의 가사를 모르면서도 즐길 수 있다는 신통력이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 처럼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인 융통성이 떨어지는 사람은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일이기에 가사를 짚어가면서 곡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감동에 접근할 수 없어서 2000년이 넘어서기 까지 이 곡에 대한 적극적인 도전을 미루곤 했다. 결국 월급쟁이를 그만두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 이후에 오페라를 하나씩 격파(?)해 나가면서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는 방법을 체득하면서 비로소 이 곡에 대한 개안이 가능해졌다.

 

알아야 느낄 수 있고 느끼고 나서야 좋고 나쁨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이기에 이후 나는 마태수난곡의 다른 음반을 하나씩 늘려갔는데 클렘페러 이후 제일 먼저 구입한 것은 1958년 녹음된 칼 리히터의 아르히브반이었다. 아마도 이 곡에 관한 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할 명반으로 그 존재감에 일호의 흔들림도 없는 녹음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평가와  나의 평가가 일치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음반의 정점은 이 리히터의 58년도 녹음이라는데 공감하는 바이다. 클렘페러의 음반이 아리아의 섬세한 표현과 합창 및 찬송에서의 진폭이 큰 감정의 굴곡으로 보다 드라마틱한 표현을 보여주는 강점이 있다면, 리히터의 58년도 녹음은 복음사가와 예수의 레치타티브가 명료하면서 종교적 긴장감이 전곡에 유지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의 주의와 관심을 장악하는 몰입도가 높은 연주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여기서 멈추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람의 호기심은 그것이 문화적 허영심과 뒤섞이면 금전적인 출혈을 대범한 자세로 의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다양한 해석을 접한다는 명분으로 무분별하게 이것 저것을 기웃거리게 하는데, 음반 3매 구성의 마태수난곡 음반을 늘려가는 것이 그런 상황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것 같다. 50년이 가까워지는 음악 감상을 위한 음반 수집 기간 중 몇 번의 음반 정리와 시골 이사시의 정리까지를 거치면서 현재 내게 남아있는 음반을 보니 생각보다는 이곡의 음반이 아직도 적지 않은 편이다. 리히터의 다른 녹음인 79년도 녹음을 포함하여, 요하네스 소머리의 뱅가드반(1977년 녹음), 존 엘리어트 가디너의  아르히브반(1988년 녹음),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의 도이체 하모니아 문디 레이블의 음반(1989 녹음), 헬무트 릴링의 헨슬러반(1994년 녹음),  필립 헤레베헤의 아르모니아 문디반(1998년 녹음),  지기스발트 쿠이켄의  첼린지반(2009년 녹음),  프리더 베르니우스의 카루스반(2015년 녹음) 등외에 푸르트벵글러의 발췌반, 그리고 리카르도 샤이가 라이프치히 게반트아우스와 토마스교회 합창단과 함께 녹음한 데카반(2009년 녹음) 등이 눈에 띈다. 내 취향은 좀 더 간결하고 투명한 연주쪽으로 기울어가는듯 하다. 

 

최근 이 음반들을 서로 비교하면서 듣다 보니, 이 곡이 호소력이 뛰어난 위대한 음악이라는 것을 새삼 절감한다.  

우리는 도대체 왜 현세의 고단한 삶을 남들과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것일까를 때때로 고민한다. 물론 그 결론은 죽는 순간까지 명료하게 정리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욕망과 번민으로 갈등하며 미움과 회한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우리가, 잠시라도 멈칫거리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참회를 통한 자기정화의 경험을 거쳐 내 삶을 넘어서서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고민하게 한다면, 이것이 예수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라는 생각을 들게하는 작품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바흐의 마태 수난곡은 비신자인 나같은 사람에게도 그 위력을 발휘한 작품임은 분명한듯 하다. 

 

  

혹시, 이런 저런 경로로 이글에 이르러 마태수난곡의 독일어-한국어 대사를 궁금해할 분이 있을지 몰라, 내가 웹서핑 중 발견한 가장 잘 만들어진 독-한 대사집을 이곳에 남겨 둔다.

 

bach-matthaus_passion_kr.pdf
0.47MB

 

 

 

아울러 YOU TUBE를 둘러보다가 발견한 필립 헤레베헤가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오케스트라, 합창단)와 연주한 것이 있어 링크를 걸어 둔다. 

 

https://www.youtube.com/watch?v=PkZW7hbdaG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