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끼고..

바흐 평균률을 듣다가...

sunis 2022. 11. 6. 17:57

 

웹 서핑 중 바흐 평균률 관련 안드라스 쉬프의 입장을 음반 내지에서 번역한 글이 보여 옮겨서 보관한 것이다.

원글의 번역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출처를 공개한다.

다른 유익한 내용이 많은 블러그이니 수시로 들러서 엿보기를 권한다. 

https://redee.tistory.com/37

 

쉬프의 바흐 평균율 신반(ECM) 내지 번역

J.S.Bach : The Well-Tempered Clavier Andras Schiff ECM  새벽에 할 일이 없어 쉬프의 평균율 신반에 실린 쉬프 본인의 글을 번역해봤다. 근데 나의 번역 수준이 너무 떨어져 내 번역을 올리지는 못하겠고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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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할 일이 없어 쉬프의 평균률 신반에 실린 쉬프 본인의 글을 번역해봤다. 근데 나의 번역 수준이 너무 떨어져 내 번역을 올리지는 못하겠고 내 번역을 검토해준 영문과 선배님의 번역을 올리기로 결정. 원문을 보낼 때 내가 만든 오타 때문에 잘못 번역된 부분을 수정했고 임의로 글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손 본 부분이 가끔 있음을 알린다. 역주는 하나를 제외하고는 내가 직접 단 거고.

 

 이 자리를 빌어 영문과 민oo 선배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Senza pedale ma con tanti colori

 

페달의 사용 없이, 그러나 다양한 색깔로

 

 

 바흐를 연주하는 데에 피아니스트들은 여러 근본적인 질문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대답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자면, 평균율을 연주하기 위한 ‘올바른’ 악기는 무엇인가? 클라비코드, 하프시코드, 오르간, 페달-하프시코드? 바흐 본인이 몰랐던 악기로 평균율을 연주하는 것이 괜찮은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구에게 그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 특정 전주곡이나 푸가의 올바른 템포와 악곡의 성격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해당 악곡의 셈여림 범위는 얼마나 되며, 그 범위는 악기나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가? 특정 악구나 푸가 주제를 어떻게 조음(調音)할 것인가? 더 많은 장식음이 필요한가? 아니면 장식음을 더 적게 사용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가? 어떤 판본이 최고의 판본인가?

 

 

 피아니스트는 이러한 질문, 혹은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지성, 그리고 C.P.E. 바흐가 말한 ‘buon gusto’, 즉 좋은 취향이 필요하다. 대답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며, ‘모든 사람이 좋아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이것이 바로 내가 이 곡을 연주하는 방식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서스테인 페달은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며, 이는 비단 바흐 음악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주자는 이 서스테인 페달이라는 놀라운 장치를 사용하여 댐퍼를 피아노 현에서 들어 올려 누르는 건반 음이 자유롭게 진동하도록 할 수 있다.

 

 

 베토벤은 최초로 서스테인 페달의 사용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위대한 작곡가이다. 그의 C#단조 소나타 Op. 27-2(역주: 월광 소나타) 1악장 전체는 ‘senza sordini’로, 즉 서스테인 페달을 사용하여 댐퍼를 올린 채로 연주하도록 지시되어 있다. 그 효과는 마법과도 같아 화음이 서로 섞이면서 진정 혁명적인 울림을 만들어낸다. 작곡가가 요구하는 것은 피아니스트가 따라야 하며, 이것이 합리적이다. 어찌 됐든 베토벤이 꽤나 위대한 음악가였으며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을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피아니스트의 99퍼센트가 베토벤의 지시를 완전히 무시하고 화음이 바뀔 때마다 애써 페달을 갈고 있다.

 

 

 왜? 이 사람들의 주장은 페달 사용으로 인한 효과가 베토벤의 포르테피아노에서는 다르게 들릴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베토벤의 브로드우드(역주: 베토벤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포르테피아노)를 쳐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다. 당연히 쳐 본 적도 없이 아는 척하는 것일 뿐이다. 뭐 나는 이 사람들과는 의견이 다른데 나는 브로드우드를 연주해보고 녹음도 해봤기 때문이다. 소리와 음량, 작동원리는 다를 수 있지만, 실질적인 음악적 아이디어는 같다. 악기의 종류와 관계없이 베토벤이 의도한 불협화음은 여전히 불협화음이다.

 

 

 그런데 이것이 대체 바흐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상당 부분 관련이 있다. 서스테인 페달은 당시의 어떤 건반악기에서도 바흐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즉, 당시에는 페달이 없었으므로 바흐가 쓴 곡은 페달 사용 없이 연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흐의 곡은 현대 피아노에서도 8개의 손가락과 2개의 엄지만을 사용해서 연주할 수 있다. 발은 사용할 필요가 없다. (한 가지 예외는 평균율 1권의 A단조 푸가이다. 이 곡의 마지막 마디는 두 손만으로 연주할 수 없는데, 이는 이 곡이 오르간을 위한 곡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는 세 개의 페달 중 가운데 페달인 소스테누토 페달의 사용을 권할 만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흐를 연주할 때 ‘피아노의 꽃(crown jewel)’인 페달을 무시해야 하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서스테인 페달은 특히 음향이 건조한 장소에서 반향(反響)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재치 있고 신중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무분별하게 페달을 사용하여 음악에 해를 가하는 위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피아노는 계속해서 오른발로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하는 자동차가 아니다. 현악기 연주자나 가수가 모든 음정에 대해 계속해서 비브라토를 사용한다면 도저히 들어줄 수 없을 것이다. 피아노의 페달은 현악기 연주자의 비브라토와 같다. 페달이나 비브라토의 사용에는 주의와 통제, 그리고 절제가 필요하다.

 

 

 바흐에게 소리의 명확성은 필수적이며, 대위법과 성부 진행의 순수성이 자명해야 하므로, 소리가 죽거나 뒤섞여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 규칙이 준수되는 한, 신중하게 페달을 사용하는 것을 금할 것은 없다. 하지만 손쉽게 해답을 찾는 것이 음악에 이로운 일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피아노에서 완벽한 레가토란 불가능하며, 다만 완벽한 레가토를 내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들 뿐이다. 두 손만으로 레가토를 시도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지만, 시도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 바흐는 분명히 자신의 음악을 손쉽게 연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이는 연주자에게나 청취자에게나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최근 나의 동료이기도 한 탁월한 피아니스트(선배 曰 이거 머레이 페라이어 아님? ㅋㅋ)가 나의 이러한 ‘절제’에 대해 질책했다. 그의 주장은 과거의 모든 위대한 피아니스트들도 바흐를 연주할 때 페달을 많이 사용했으니, 우리도 그 선례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이러한 추론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위대한 음악가이자 저명한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故 조지 말콤은 나에게 페달 없이 바흐를 연주하되 순수성의 기쁨을 즐기라고 가르쳤다.

 

 

 언젠가 기교가 뛰어나고 성공한 젊은 피아니스트가 조지 말콤을 찾아와 당신을 위해 바흐의 D장조 토카타를 연주해도 되는지 물었다. 말콤이 동의하자 그 젊은 친구는 건반 앞에 자리를 잡고 오른발을 페달 위에 올려놓고 팔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말콤이 갑자기 외쳤다. “멈춰!” 이 가여운 친구는 “아직 음 하나도 연주하지 않았다고요!”라 말했고, 말콤이 “그렇지. 하지만 막 연주하려고 했잖아.”라 하였다고 한다.

 

 

 나에게 바흐의 음악은 흑백이 아니다. 바흐의 음악은 풍부한 색채로 가득 차있다. 내 상상 속에서 각 조성은 하나의 색깔에 해당한다. 평균율의 각 24개 장·단조의 전주곡과 푸가는 이러한 화려한 환상을 누릴 기회를 준다. 태초에 순진무구함만이 있었고 따라서 C장조는 (그리고 C 장조의 모든 흰건반이) 눈과 같은 순백이라 상상해보자. 두 권의 마지막 곡은 B단조이고 이는 죽음의 조성이다. 1권의 B단조 푸가를 B단조 미사의 Kyrie와 비교해보라. 이는 검은 음정이다. 이 양극 사이에 모든 다른 색깔이 있다. 먼저 노랑, 주황색, 황토색 (C단조에서 D단조까지), 파란색의 모든 색조(E-flat장조에서 E단조까지), 초록(F장조에서 G단조까지), 핑크와 빨강(A-flat장조에서 A단조까지), 갈색(B-flat장조에서 B-flat단조까지), 회색(B장조), 그리고 마침내 검정까지.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고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음악이 단순한 음과 소리의 나열 이상이라 믿게 된다면, 약간의 환상은 환영받을 수 있다.

 

Andras Schiff

출처: https://redee.tistory.com/37 [赤赤:티스토리]

 

 


 

안드라스 쉬프의 위 글을 읽으면서 나는 씩 웃음을 흘렸다. 

꼼꼼하게 다시 읽어봐도 피아노로 평균률을 연주할 때 가장 논란이 큰, 페달을 쓰지 말라는 말도 아니고 제대로, 적절하게, 잘 쓰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즉 비브라토의 과도한 남발은 노래나 연주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부분이 아니던가. 사실 듣기에 따라서는 가장 무책임한 말이기도 할 수 있다. 내가 시골에 내려와서 고추를 건조할 때 적정한 건조법을 몰라서 남들에게 물으면 대체로, "잘 말리라"고 했다. 그래서 그 잘 말리는 기준이 무언가 물으면 또, "너무 바삭하지 않게  적당하게"라고 하더라. 이건 뭐, 답이 없는 대답, 들으나 마나한 대답이었다. 결국, 쉬프의 이야기는 자신의 음반 녹음이 나름 많은 신경을 써서 잘 만든 것이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바흐의 평균률 음반과 관련한 이야기는 좀 어려울 정도로 스스로도 정리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머리속에서 맴도는 생각이 가닥은 추려지지만 그렇다고 깔끔하게 매듭지를 정도로 정리가 되지 않을 때의 그 갑갑함이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누가 내게 바흐 평균율(정확하게는 24개의 전주곡과 푸가) 연주 중 가장 좋아하는 연주가 누구의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정확하게는 다른 사람들이 언급하는 연주자에 대한 내 호 불호를 나름대로 밝히는 수준 이상을  못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 쉬프의 음반 내지글을 옮긴 이유는 이 중에서 취할 중요한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부분에 언급된 내용인데, <평균율>을 과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단서로 24개의 장단조가 각각의 색채를 갖고 있다고 한 부분은 몇 번을 읽고 생각해 봐도 참 탁월하고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모든 악기의 제왕과 같은 지위를 차지하지만 늘 현을 울려서 소리를 내는 방식에 따른 표현 기법상의 여러 논란을 동반하기도 하는 악기이다. 이건 너무 다채롭고 풍성한 표현이 가능한 악기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발성이 단순하고 표현의 영역과 범위가 한정된 악기와는 다른 배부른 투정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건박 악기지만 그 음을 만드는 방식이 다른 4종의 건반악기, 즉 클라비코드, 쳄발로, 오르간, 피아노 중 어떤 악기가 평균율 조율 및 바흐곡 연주에 적합한지를 두고도 논란이 적지 않은것 같다. 그래서 아예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던지 레빈은 클라비코드, 쳄발로, 오르간 그리고 포르테 피아노를 모두 사용해서 바흐 평균률을 녹음한 음반을 출반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악기별로 소리의 음색이 다르고 음향적인 표현 범위가 차이가 커서 좀 산만한 연주 녹음이라고 생각하고 한쪽에 치워두었었는데, 요즘은 악기 논란을 떠올리면서 평균률 곡 마다 레빈이 적합한 표현 도구라고 판단한 악기를 동원하여 연주한 음반이라는 점에 주목해서 들으니 각별한 맛이 느껴진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된 악기는 현대 피아노가 압도적이다. 이것은 쾌적한 고성능 세단을 타고 여행할 수 있는 현재, 옛날의 마차나 소달구지를 타고 여행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원전주의 연주 흐름이 제법 기세를 떨치던 21세기 전후한 시기에는 바흐의 연주에도 이 기운이 크게 작용했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악기는 음악을 표현하는 도구라고 볼 때, 결국 연주의 우열은 듣는 사람에게 음악적 감동을 줄 수 있는 표현이 가능한 악기와 연주법이 최고라고 생각했었다. 학문적 호기심이나 의고적 취향의 호사스러운 향유를 위한 원전악기를 중심으로 한 시대연주의 유행속에서도 음악적 감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그 의미가 크게 와닿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심란할 때 평균률 전곡을 배경음악 처럼 틀어놓고 듣다가 말다가 하는데, 인상적인 음반들을 둘러보면 다음과 같다. 

 

 

글렌 굴드 Glenn Gould

 

글렌 굴드라는 연주자가 평균적인 범주에서 자신의 개성을 절차탁마하는 연주자가 아니기에 그에게 유독 바흐의 연주 녹음이 많은 것이 좀 기이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에 나는 차례 차례 낱장으로 굴드의 바흐 건반음악 녹음을 모아가고 있었다. 평판도 좋았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수 있지만, 바흐의 음악이 이렇게 가볍게 연주되어도 좋은지 싶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여러 연주들 두루 섭렵한 이후, 특유의 또박 또박 음을  끊어서 음향의 장식을 털어버린 연주는 다른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자기 확신의 근거가 있어야 연주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이런 연주를 녹음으로 남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Sviatoslav Richter

 

이 거장의 이름을 잃은 적이 없는 피아니스트의 높은 명성을 인정하지만, 나와 리히터는 거의 언제나 맞지 않았다. 아니 꼭 리히터만이 아니라, 러시아 출신의 연주자로 내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연주자가 별로 없다는게 문제다. 음악외적인 러시아에 대한 나의 편견이 러시아 출신 음악가들에게 박한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고 본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의 감정은 너무 진폭이 크고 그 표현이 극단적이라는 편견. 레코드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은 리히터의 72-73년 녹음된 이 음반의 음질에서 좋지 않은 음향적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그것이 리히터의 특이한 연주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리히터의 극단적인 섬세한 연주를 통한 신비주의적 표현이라고 본다. 위에서 언급한 굴드의 연주와는 상반된 음향 효과를 특기로 하는 리히터의 연주는 내게 언제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았다. 

그런데,  러시아 출신의 연주자 중 사뮤엘 파인베르크 Smuel Feinbrerg 평균률 연주 녹음은 이상할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처음 들었을 때 극한의 낭만주의적 해석이라고 느끼면서 제대로 듣지도 않고 한 쪽으로 치워두었던 음반인데, 전곡을 다 듣고 나서 굴드의 음반 못지 않게 내게 크게 자리잡은 평균률 연주 음반이 되었다. 분명 강약과 템포의 조절이 신경질적일 정도로 세밀하지만 만들어진 소리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는 점에서는 굴드의 연주와 같은 해석의 맥락이 이어지는 느낌을 준다. 

 

 

안드라스 쉬프. Andras Schiff

 

이 헝가리 출신의 피아니스트는 좀 재미있는 면이 있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주로 데카 레이블을 통해서 많은 연주 녹음을 남겼는데, 그 연주들이 모두 준수한 연주로 평가가 높았으나, 나이에 비해서 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연주라는 느낌을 주었던것 같다. 그러더니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과거의 녹음을 갱신한 신녹음을 ECM레이블에서 내놓기 시작했는데, 같은 레퍼토리의 연주일 경우, 신녹음이 훨씬 생동적인 느낌이 든다. 대개의 경우, 나이를 먹으면서 템포가 느려지고 해석이 내성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연주자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바흐의 평균률 음반의 경우, 두 종의 녹음을 모두 갖고 있는데, 대중적으로는 신녹음에 더 높은 평가가 주어지는것 같지만, 나는 첫번째 데카반이 음악적 표현의 측면에서 더 좋게 느껴진다. 내 주관적으로는 가장 표준적인 연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한없이 좋은 느낌이 들지만 또 내 컨디션에 따라서는 지루하고 단조롭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에프게니 코롤리오프 Evgeni Koroliov

 

역시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인데 이 연주자는 적어도 내게는 비교적 덜 러시아적으로 느껴진다. 음악을 매우 진지하게 해석하고  치밀하게 표현하는 연주자라는 느낌이 강한데 극단적인 과장을 습관적으로 하지 않는 점이 코롤리오프의 연주녹음들에 내가 호감을 갖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런면에서는 러시아 출신이지만 오히려 독일-오스트리아 계의 연주자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연주자와 비슷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러시아 출신이지만 내게 호감을 주는 피아니스트로는 그리고리 소콜로프(Grigory Sokolov)가 있다. 소콜로프의 평균률 음반은 아직 찾지 못했는데, 그의 푸가의 기법 연주 녹음은 코롤리오프의 연주 녹음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반 중의 하나다.

 

 

로버트 레빈 Robert Levin

 

이 학구적인 연주자는 헨슬러 레이블에서 개성적인 음반을 가끔 출반한다. 

레빈은 평균률을 쳄발로, 클라비코드, 오르간, 포르테피아노 등의 악기를 곡마다 달리 선택해서 연주 녹음했다. 이런 착상은 바흐 건반음악의 원전주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역설적으로 교조적인 원전주의의 편협성을 경고하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느껴진다. 연주의 측면에서 보아도 레빈의 평균률 해석은 범작의 수준을 넘어선 연주라고 생각해서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음반이다. 

 

 

로잘린 튜렉 Rosalyn Tureck

 

튜렉의 바흐 건반음악 연주 음반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평균률의 경우 나는 1952-53년에 녹음된 음반과 70년대 공연녹음을 편집한 BBC 전설 시리즈의 스테레오 음반을 갖고 있었는데, 현재는 스테레오반은 다른이에게 주고 50년대 모너럴 녹음만 갖고 있다. 두 종의 연주 모두 좋았지만 내게는 50년대의 튜렉 평균률에 좀 더 순수한 진지함이 담겨있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튜렉의 연주는 연주자 본인도 매우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주했겠지만 듣다보면 듣는 사람도 자꾸 긴장감을 높이면서 에너지를 쓰게 하는 특징이 있는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듣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듣고 싶어지는 음반이다. 듣고 나면 내가슴에 깊은 발자욱을 남기는 연주 중의 하나다.  

 

 

그외 현재 내게 남아있거나 또는 남의 손에 넘겨진 음반이 몇 종 더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음반 이상의 가치를 두고 싶지는 않았기에 현재 내 수중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딱 한 종 에드빈 피셔 Edwin Fischer 의 평균률 음반은 뒤늦게 다시 구해서 갖고 있으면서 듣고 싶다. 이런 경우가 남에게 주고 뒤에 후회하는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