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작곡가 또는 연주자 별로 대표적인 음반을 한장씩 정리해 보려한다. 시골 생활 중에 서울에서 일부 정리를 하고 가져온 음반들이 있지만 일부는 없어서 아쉬운 음반도 있고 또 일부는 여전히 별로 듣지 않는 음반이 있어 일부러 찾아서 들어주는 경우까지 있고 보면 이런 내 음반을 좀 내 스스로 정리해 둘 필요가 있을것 같다. 소위 말하는 명반이라는 것들이 그런 선택 조건에 가장 유리 할 것이지만, 내 기준에 따른 음반의 정리이므로 나의 기호와 취향 그리고 개인적인 집착과 편견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예전에 친구들과 특정한 곡에 대해서 딱 한 장의 음반만 선택하게 된다면 골라 잡아야 할 유일한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소개되는 음반은 애초에 객관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음을 미리 밝혀 둔다. 나는 첫 번째로 슈베르트의 즉흥곡과 악흥의 순간을 녹음한 에드빈 피서의 음반(TESTAMENT, SBT 1145)을 골랐다. 크게 유명세가 있는 대곡이 아니다. 어쩌면 매우 조촐한 피아노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8 Impromptus D.899 & D.935, 6 Moments musicaux D.780 , 즉 8곡의 즉흥곡과 6곡의 악흥의 순간이다. 즉흥곡(Impromptus)이란 말 그대로 특별한 형식을 빌리지 않고 떠오른 악상을 자유롭게 펼쳐서 음악을 만든 소품을 말한다. 작품명이 좀 특이한 악흥의 순간(Moments musicaux)은 기본적으로 즉흥곡과 유사하나 기교적인 단순함으로 즉흥곡에 비해 다소 편안한 느낌을 주는 피아노 소품집이다.
슈베르트(1797 - 1828)를 이야기할 때는 좀 착잡한 감상이 유독 많이 떠오른다. 31년을 이승에 살다간 천재 음악가라고 하고 나서도 끝맺음이 뭔가 허전한 여운이 남는다. 평생 고단한 삶을 외롭게 살다간 이승의 방랑자의 이미지가 가슴 한 켠을 파고드는 서늘한 바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의 음악에 외로움과 고단한 세상사를 체념한 듯한 탈속적인 무구한 아름다음이 담겨있는데 이것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저릿하게 만든다. 문득 인생이 덧없다는 느낌이 들 때, 슈베르트를 듣는다. 그런데 복잡하고 심각한 것을 모두 버리고 인생의 한 순간에 전률처럼 감각에 파고드는 투명한 아름다움의 결정체와 같은 이 피아노 소품들을 듣게 된다. 모든 음반은 곡의 위대성과 그 곡을 연주한 연주자의 위대성이 일치하는 경우에만 특별한 지위와 명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런 것을 소위 명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명반은 상업적 성공을 위한 각종 분식이 가해진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인간의 영악한 장난질의 껍질들을 털어버리기 위해서는 일정한 세월의 풍상이 불가피하게 필요하다. 그래서 유독 명반의 반열에는 오래된 녹음의 음반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옛날 어린 청년시절에, 지금의 내 나이 정도된 사람들이 잡음이 귀에 거슬리고, 녹음 레벨도 들쭉날쭉한 음반을 명반이라고 골라서 칭찬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것이 혹시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 내려온 전설의 권위가 작용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이런 음반에서 소리를 따지지 않는 가슴에 촉촉하게 스며드는 음악을 들으면서 내 생의 한 순간을 행복해 한다. 그것이면 족한 것이다.
좀 더 깨끗한 음향의 피아노 소리와 좀 더 정리된 연주를 듣고 싶다면 알프레도 브렌델의 필립스반을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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