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렐리의 음악을 들으면 세속음악이지만 매우 품위있고 장중하면서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는다. 17-18세기는 문화사적으로 바로크 시대로 불리면서 고전주의 시대와 연결점을 모색하는 시기였다. 이 시대를 전후한 때에 음악사적으로 대단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 점도 이런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니까 종교가 압도적으로 인간의 삶을 지배하던 시대가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과정속에서 <30년 전쟁 : 1618-1648>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신과 인간을 보는 시각에 변화가 왔다고 생각된다. 유럽사에서 30년 전쟁은 최후의 종교 전쟁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세속적인 영토 탈취전쟁이었다고 평가된다. 이런 30년 전쟁의 평가속에 위에서 말한 유럽사회의 신성과 인성의 모순에 대한 인간 감수성의 변화가 음악뿐 아니라 인간사의 모든 면에 반영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이다. 유럽은 이후 전쟁의 수습과정에서 정치사회적으로 근대사회의 문지방을 넘게 되었고, 문화적으로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시작된 <르네상스>운동이 전유럽의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인간중심의 세속적 가치관이 귀족이나 성직자는 물론 평범한 일반 시민에 이르기 까지 현실적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30년 전쟁이 사람의 삶과 그 삶을 살아가는 생각과 태도를 모두 바꾸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코렐리의 삶을 전후해서 명멸한 음악가들을 유명한 사람들로만 살펴보자. 이태리를 비롯해서 독일 등 30년 전쟁 이후 일단의 음악적 천재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우선 독일계로서 하인리히 이그나츠 프란츠 비버(1644-1704)가 코렐리 보다 먼저 태어났고, 이태리인으로서 유명한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가 코렐리보다 나중에 태어났다. 비발디 보다 늦게 태어난 이태리의 음악가로 내 기억에 남는 사람은 리에트로 안토니오 로카텔리(1695-1764)가 있다. 한편 독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그 유명한 텔레만(1681-1767), 바흐(1685-1750), 헨델(1685-1759)이 떠오른다. 그외 내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음악가들이 이들외에도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우선 음반으로나마 그 음악적 흔적을 가늠할 수 있는 사람 몇 만을 대표적으로 떠올려 보았다. 이들은 모두 음악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보아도 무방한 사람들인데 나는 이런 사람들 속에서 유독 코렐리를 특별하게 주목해서 보고자 한다.
음악적으로 코렐리는 바이올린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다.
당시의 모든 음악가들이 당대 최고의 흥행산업인 오페라에 참여하거나 또는 교회에 고용되어 바흐와 같이 칸타타와 수난곡 등 오라토리오 등으로 교회의 요구에 부응해야 했으나, 유일하게 코렐리만이 그 다른 목적에 부수되는 부차적인 음악에 참여하지 않고 오직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음악 교육과 바이올린 소나타와 협주곡의 작곡에만 전념한 사람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코렐리의 작품으로 현재 전해져서 음반으로 그 음악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는 곡들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바이올린 소나타 Op. 5 나 콘체르토 그로소 Op. 6 만으로서도 그의 음악사적 존재감은 흔들림이 없다고 본다. 어쩌면 비발디와 바흐의 성취는 이런 코렐리의 성취를 밀알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도한 표현일까? 내게는 그의 음반이 몇 종이 있는데 한결같은 느낌은 음악적 흐름의 유연함과 표현의 우아함 그리고 균일한 형식미의 안정감 등이 인상적이다. 이것은 바흐에게서 느끼는 다소 고집스러운,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매너리즘에 가까운 자기 표현 양식의 고집스러운 관철과도 다르고 비발디류의 감각에 치우친 선동적인 특징과도 구분되는 코렐리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코렐리의 음악을 들으면서 코렐리가 정립한 트리오 소나타나 콘체르토 그로소의 양식이 없었다면 이후 바로크 시대를 거쳐 고전시대의 음악적 형식이 과연 가능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소나타라는 양식은 교회 소나타와 세속 소나타로 구분되는데 코렐리는 이 분야에서 주목할 작품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4악장 체제의 교회 소나타(Sonata da Chiesa)를 비롯하여 전주곡과 춤곡이 포함된 세속 소나타(Sonata da Camerata)의 양식은 코렐리에서 완성된 형태를 보여준다. 이전에도 소나타라는 이름의 음악은 존재했으나 그 음악형식이 정립되지 않아서 음악가의 개인적인 기량의 과시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주는것에 지나지 않았다. 코렐리 때에 이르러 교회 소나타는 춤곡이 포함되지 않은 느린 악장- 빠른 악장 - 느린 악장 - 빠른 악장의 구조로 완성되었고, 세속 소나타는 전주곡과 다양한 춤곡이 포함된 구조로 이루어진다. 만약 딱 한 장의 음반으로 코렐리의 교회 소나타와 세속 소나타를 맛보고 싶다면 샨도스 레이블의 퍼셀 4중주단이 녹음한 음반으로 대략의 느낌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 소나타를 세속 소나타와 구분해서 좀 더 깊은 맛을 느끼고 싶다면 아르카나 레이블에서 출반한 엔리코 가티와 앙상블 오로라의 음반을 추천하고 싶다. 세속 소나타의 경우는 앤드류 맨츠와 리차드 에가의 아르모니아 레이블의 음반과, 엘리자베스 월피쉬의 히페리온 레이블의 음반을 들어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콘체르토 그로소(Op.6)를 온전하게 경험하고 싶다면 오푸스 111레이블의 유로파 갈란테와 파이오 비온디의 음반을 권하고 싶다. 이정도의 음반을 통해서라도 코렐리를 경험해 본다면 바흐와 비발디가 코렐리에게 진 빚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같다. 기회가 된다면 바흐의 세속 바이올린 소나타집(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나와는 구분된다)이나 헨델, 텔레만의 음악들과의 비교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코렐리는 이후 로카텔리 등의 후계자를 양성한 점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을것 같다. 로카텔리의 경우 바이올린 음악에서는 바로크 시대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된다. 오늘날 그의 작품은 대부분 소실되어 많이 전해지지 않는 실정이지만 희소한 바이올린 소나타작품이나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을 통해서 그의 작품 세계가 범상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로카텔리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보면 3악장 체제에서 첫 악장과 종 악장에 카프리치오를 넣어서 마치 오늘날의 협주곡의 카덴차를 방불케하는 독주 연주자의 기량을 특별하게 돋보이게 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외 직접 코렐리를 사사하지는 않았어도 그의 영향을 받은 음악가는 바흐의 아들인 C.P.E 바흐에 이르기 까지 유럽 전역에서 음악가들에게 그 영향력이 적지 않음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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