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영화를 특별하게 언급하는 것은 나로서는 처음하는 일이다.
그 이유를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화를 보는 것은 잠깐 동안의 현실 도피 또는, 무료한 시간의 삭제라고 여길 정도로 나는 영화라는 장르에 대해서 매우 야박한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국내영화에서 좀 성공했다하면 쉽게 1,000만 관객 돌파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건 우리의 인구를 고려했을 때 놀라움을 넘어 아주 절망적인 성공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한 국가사회에서 전인구, 그러니까 젖먹이 아이에서 거동을 불가한 상태로 생명만 유지하는 사람까지 모두 포함한 인구의 1/4이상이 한 영화를 다 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게 정상적인 사회라면 가능한 대중적 몰입과 집중인지 내 자신에게 되묻게 될 정도로 우리사회의 과도한 대중적 관심과 흥미의 쓰나미 증세를 싫어하기도 하고, 최근의 한국 영화들은 그 내용이 정서적으로 너무 자극적이고 메시지의 전달 방식도 너무 직설적이며 극적인 리얼리티가 전면적으로 부정되는 과도한 비약이 난무하는 허무맹랑한 구성이 역겹다는 것이 내가 최근 우리 영화판을 보는 시각임을 숨기지 않겠다.
그런 내가 한 영화를 보고서 마음에 짙은 여운이 계속 남았는데 그 영화가 바로 <리틀 포레스트>이다.
그래서 영화와 관련된 정보들을 검색해서 알아보니, 내 느낌의 근거가 적어도 내 취향과 기호, 그리고 나란 사람의 가치관과 인생관에서 납득가능한 요소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먼저, 감독이 임순례라고 하는데, 나는 해당 감독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 감독의 이름이 기억에 남는 것은 언젠가 TV에서 우연하게 볼 수 있었던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 임순례였고, 그 당시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고 난 후에 내 가슴 한 켠에 쉽게 사라지지 않고 은근하게 남겨졌던 영화속 인물들에 대한 애잔한 동정심(?)과 유사한, 잔잔하지만 쉽게 멈추지 않는 마음속의 파문이 이 영화에서도 느껴졌다. 그리고 한가지 특이한 것은 영화의 전반적인 진행이 요란스럽지 않으면서 차분하고 담담하고 소박했는데, 이것은 어쩌면 그간 내가 경험한 몇 안되는 일본영화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했는데, 이 영화가 일본영화의 한국버전 리메이크라는 사실이 또한 그런 짙은 여운의 다른 근거였다. 그런면에서 내 정서가 일본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한다면 그것이 일종의 비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할지라도 애써 내가 달리 변명하고 싶지는 않다.
시골 출신의 한 젊은 여자가 서울로 가서 원하던 바를 성취하지 못하고 피곤한 심신을 쉴 마음으로 고향에 내려왔다가 현재와 과거의 기억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시골에서의 일상적인 삶을 천천히 살아내면서 결국 도피나 은둔이 아닌 소박한 삶의 뿌리내리기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음식과 기후, 그리고 고향 친구와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기억을 번갈아 변주하면서 구성한 이 영화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적이면서 또 일본영화적인 요소가 함께 섞여서 나로 하여금 생전 처음 영화에 관련된 넋두리를 늘어놓게 만들었다.
뭐, 좀 거창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진부한 질문일 수 있지만,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지고 내 자신에게 그 답을 들을 때, 이 영화는 일말의 힌트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 내가 이 영화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한 측면이라고 하면 나와 다른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 과도한 허풍이라고 할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나라는 인간은 나와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함께 한쪽으로 쏠리고 기우는 그런 삶을 살지 않았고 또 나이를 들어가면서 그런 삶에 굴복하기 싫어서 시골로 하향했기에 그런 허풍이나 과장이라는 비난에 대해서도 어떤 비난이나 심지어 불만도 갖고 싶지 않다. 인생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모두에게 특별하거나 거창하고 영웅적일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본다. 스스로 지구상에서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간절한 것은 소소한 일상의 만족과 기쁨으로 교직된 행복일 수 있다. 아주 어린 시절 나는 막연하게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서 열씸히 공부하고 부모가 만족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자식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아무 생각이 없었기에, 그러니까 자기 주관이 없었기에 당연한 평범한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어린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된다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주관과 소신을 저절로 갖게되는 것은 아니었다. 늘 부모, 사회의 상투적인 시선과 기준에 자신을 맞추어 가면서 살아가고 그 적중도에 따라 행복이 비례하여 성취될 것으로 여기면서 앞뒤 없이 살아온것이 내 삶이었고, 또 내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이었다. 그러다가 나이 40이 넘어가면서 문득 내 삶의 중심과 방향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느껴지기 시작했던것 같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런것 같았다. 우여곡절끝에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하향한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 좀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다행이라는 안도감속에서 이 영화를 보니 영화속 주인공의 젊음이 부럽기 짝이없다.
행복은 자신의 밖에서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부에서 그 그릇을 만들고 그것을 천천히 채워가는 것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야단스럽지 않은 사람과의 담백한 관계, 대단하지 않아도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의 섭취와 나눔, 자연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수확을 위한 성실한 노동과 겸허한 인내......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큰 지지와 호응을 얻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말은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둔것은 아니라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영화를 만들어 가는 영화감독이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영화는 감독의 정서와 가치관이 작품에 투사되는 것이기에 앞으로도 임순례 감독의 영화는 내 공감을 얻을 가능성이 높을것 같다. 적어도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리틀 포레스트를 통해서 보여준 감독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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