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특별히 욕심이나 남에게 돋보이려는 마음이 없으면 보고 듣는것이 다르다.
심지어 예전에는 잘 몰랐던 존재의 가치를 문득 깨닫고 아쉬워 할 때도 있다.
내가 지휘자로서 크게 그 존재감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던 이가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였다. 소위 말해서 평균 이상의 실력은 보장이 되있는 지휘자라고 인정하지만 특별한 개성이나 독특한 매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서 늘 음반 선택에서 2번째 또는 3번째로 밀리거나 원하던 음반이 없을 경우 할 수 없이 선택하는 경우였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런데, 요즘 하이팅크의 말러와 부루크너를 듣다보면 내가 젊은 시절 경솔했고 또 그래서 성급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들리지 않던 하이팅크의 음악의 감추어진 매력이 점점 크게 느껴진다. 화려하고 짜릿하지 않았지만 편안하게 귀를 기울이면 온갖 매력있는 소리의 다양한 향연이 느껴진다.
그가 비교적 늦게 녹음해서 출반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의 말러 교향곡 9번을 듣다보면 어깨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하게 된 적도 있다. 베를린 필과의 말러 교향곡 5번 녹음(1988)을 듣다보면 과거 아바도의 시카고 교향악단과의 녹음에서 느꼈던 산뜻하고 깔끔한 연주와는 좀 궤를 달리하는 이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스펙트럼이 넓은 품위있는 연주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기왕에 그의 연주 음반의 가치를 몰라보고 잘 듣지 않고 또 음반도 많이 모아두지 않은 것이 아쉽다는 생각을 한다. 젊어서는 임팩트가 강한 연주, 개성이 강한 연주, 그리고 남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차이점이 드러나는 연주에 귀가 솔깃했었다. 그런데 요즘에 이르러서는 하이팅크류의 연주가 아주 편안하게 들리고, 아울러 과거에 경시하거나 주관적으로 폄훼헸던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도 다 나름의 존재감이 분명한 것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귀가 순해진 것일까?
아니면 내 귀가 비로소 이제 순리에 따라 트이기 시작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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