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초입이고 농사일이 번잡해진 요즘, 내가 문득 편안하게 듣는 음악이다.
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 은 바흐와 같은 시대를 살고 음악가로 활동했다. 현대에 와서는 바흐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음악의 아버지 등등..) 텔레만을 아는 사람은 적거나 거의 없는 실정이지만, 당대에는 독일은 물론 유럽에서 바흐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유명세를 누리던 음악가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음악이 바흐의 음악 만큼 오늘날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는 여러측면에서 말할 수 있집만, 나는 개인적으로 서양음악의 주도권을 쥔 독일-오스트리아 권에서 독일-오스트리아의 범위를 넘어선 국제적인 텔레만의 음악 보다는 바흐의 음악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본다.이것은 영국에서 활약한 헨델의 경우에도 같이 적용되는것 같다는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텔레만의 음악이 체계적으로 녹음되어 시장에 출시되지는 못한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바흐가 엄두도 내지 못할 수준의 다작을 작곡한 음악가지만 오늘날에는 상품성을 고려한 음반사의 기획에 따라 많지 않은 음악이 녹음되는 실정인데, 그나마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다고 할 수 있는것이 "식탁음악Tafelmusik (1733)" 이라는 실내악 모음곡이 있고, 그외 독주악기를 위한 판타지(The Twelve Fantasias for Transverse Flute without Bass TWV 40:2-13)와 유명 연주자가 선별하여 녹음한 관악 협주곡 등이 눈에 띄는 수준이다.
그런데 많지 않은 텔레만의 음악을 듣다 보면 한가지 뚜렷하게 바흐의 음악과 차별화되는 점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음악이 비교적 형식과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매우 간결하고 유연한 흐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기 저기 텔레만의 음악에 관계된 자료를 훑어보면서 알게된 조각 지식을 엮어서 보면, 이태리 음악과 프랑스 음악을 아우르는 국제적인 감각을 갖추고 있던 텔레만이기에 이태리의 바로크 전통과 프랑스의 원고전주의 갈랑뜨(Galante) 풍조를 수용한 탓이라고 하는데 이런 주장에 나는 공감한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음악의 발전 과정상 종래의 바로크 음악을 집대성한 바흐와 달리 텔레만은 바로크 시대를 넘어서 고전주의를 지향한 선진적인 음악가였다고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텔레만의 음악에서는 얼핏 하이든과 모짜르트의 느낌이 스쳐가기도 한다.
그의 음악 중 내가 가장 높이 평가하고 애청하는 것이 파리4중주곡인데, 이곡은 풀룻, 바이올린, 비올라 다 감바(또는 첼로), 하프시코드의 4개의 악기가 연주하는 트리오 소나타 형식의 프랑스 풍 실내악 모음곡들의 묶음이다. 프랑스 모음곡은 거의 반드시라고 할 만큼 전주곡(Prelude)으로 시작하여 느리고 빠른 무곡이 다양하게 선택되어 변주되는 특징이 있는데, 텔레만이 프랑스 음악계의 초청을 받아 파리를 방문하면서 프랑스 풍의 실내악 모음곡집을 "새로운 6곡의 사중주 모음곡집, Nouveaux Quartuors, 1738)"을 마련하여 파리에서 출판한 것인데, 여기에 1730년에 함부르크에서 작곡되었던 6곡의 4중주곡을 1736에 파리에서 새로 출판한 것에 착안하여 모두 12곡의 실내악 모음곡집을 파리 4중주곡으로 부르기도 하고 또 실제로 음반으로 녹음을 남기기도 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파리 4중주곡은 6곡의 새로운 4중주곡이고, 함부르크에서 최초로 출판된 4중주곡은 이태리의 콘체르도 양식(빠름-느림-빠름)과 소나타 양식(느림-빠름-느림-빠름), 그리고 프랑스의 모음곡 양식(서곡과 무곡의 조합)에 따라 각 2곡씩을 조합하여 QUADRI라는 이름으로 출판한 4중주곡집이다.
나는 이 파리 4중주곡집의 음반을 2종 갖고 있는데, 구스타프 레온하르트(하프시코드)와 쿠이켄 형제들이 남긴 음반(SONY- VIVARTE)과 CPO 레이블의 음반이다. 쿠이켄 형제들의 녹음은 4개의 악기가 동원된 연주 녹음인데 CPO레이블의 녹음은 비올라 다 감바와 첼로가 함께 포함된 5개의 악기가 동원된 연주인 점이 다르다. 첼로가 더해진 녹음은 음악적 양감의 풍성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점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또 사람에 따라서는 단점일 수도 있을것 같다. 나는 깔끔하고 경쾌한 느낌의 SONY반을 선호한다. 바흐의 세속 음악이 주는 약간 묵직한 느낌과는 전혀 다른 경쾌하고 발랄한 느낌의 텔레만의 실내악은 더위가 몰려오는 요즘 아침 저녁에 듣다보면 마음이 정갈해지는것 같다.
아래 링크를 따라가면 You Tube를 통해서 음질과 연주가 양호한 파리4중주곡을 들을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Wlfn5MgZmU&list=PLhwKS3Vi_qAaiaTQe-lTra34aiYkcNV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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