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이사올 때, 시골집에는 이전 주인이 사용하던 기름을 사용하던 열풍건조기가 있었다.
작년 가을에 늦고추를 수확한 후 고추를 말릴 때, 기름 건조기를 사용했었다. 해당 건조기는 그 생산년도를 알 수도 없었고, 매우 낡은 상태였기 때문에 버너 작동도 불안정하고, 센서 작동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걱정스러웠던것은 이런 안정성이 떨어지는 기름 건조기를 3일 정도 주야로 작동시킨다는 것은 화재의 위험성이 있어서 건조기를 작동할 때는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전기 건조기로 교체를 결심했었다.
무엇이든 물건을 구입할 때는 여러 정보를 사전에 검색하는 조사과정이 필요하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전기를 사용하는 건조기는 기본적으로 그 작동시스템이 단순한 편이므로 제조사별 상품의 성능 차이는 크지 않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것은 고온건조(60도 내외)를 통해서 건조시간을 줄이는 방식과 저온건조(50도이하)로 고추 건조품질을 높이는 방식의 차이와 장단점을 파악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적합한 제품을 선택하면 될것 같다. 나는 최소 72시간에서 90시간 정도의 건조시간이 소요되는 저온 건조방식의 건조기를 선택했다. 가능하면 고열로 건조하는 과정에서 고추의 맛을 좌우하는 켑사이신 성분이 파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50도 이하에서 건조하는게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부분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사람에 따라 건조기 선택의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가능하면 태양초를 기본으로 하여 고추가루를 서울에 있는 친지들에게 판매하는 것을 주로 하기에 건조기의 필요성은 그다지 시급하거나 크지는 않다. 그러나 고추 건조를 오로지 빛과 바람에 의존하는 태양초는 기후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 생산량을 가늠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래서 고추가루외에 여분의 고추를 고추상인에게 판매할 경우나, 수확을 한 후 2일 이상 비가 내리는 등 기후가 나쁠 때 고추를 제대로 건조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또 앞으로도 가능하면 세척한 후 고추의 불순물이 최소화된 고추가루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추 건조기를 사용해야 할 것이기에 따로 목돈을 들여 고추 건조기를 교체하게 된 것이다.
태양초와 건조기로 건조한 세척 청결고추가루의 수요를 친지들에게 전화상으로 확인하니, 대부분의 친지들은 태양초를 선호한다. 그런데, 태양초는 세척을 한 후 비닐 하우스를 완전하게 밀폐하고 고온으로 찌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건조하기는 매우 어렵고 힘들다. 물론 소량이라면 고추를 세척 후 하나씩 가지런히 배열해서 서로 겹치지 않도록 널어서 자연 건조가 가능하기도 할 텐데, 많은 양의 고추를 수분이 남아있는 상태로 고추가 서로 겹쳐진 상태로 자연 건조를 시키면, 햇볕이 강하고 바람이 좋아서 통풍이 잘 되는 경우가 아닐 경우 부패를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농원에서는 건조 하우스의 바닥에 비닐을 깔고 그 위에 볏짚을 두텁게 편 후 검은색 부직포와 그믈망을 깔아서 건조장을 만들었기에 그나마 습도의 변화에 어느 정도의 탄력성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날씨가 최소한 4~5일 연속해서 쾌청하지 않다면 양질의 태양초를 만들기는 힘든게 현실이다. 기계를 통해서 건조하지는 않았지만 비닐 하우스에서 측창과 출입문을 폐쇄한 채 이틀 정도 찌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그 과정에서 하우스내의 온도는 50도를 넘어 60도를 넘나드는데, 이런 조건은 고온 건조방식(55도~65도)의 기계 건조로 캡사이신 성분이 파괴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외형상으로는 자연 건조의 모습을 띄지만 내용상으로 고온의 열풍으로 건조하는 것과 사실상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 불편한 사실이다. 그래서 저온 건조방식(40도~49도)으로 캡사이신 성분의 파괴가 초소화된 기계 건조방식을 모색한다면 안정적인 고추가루를 만들 수 있을것 같기에, 좋은 고추가루를 만들것을 목표로 하는 내게는 건조기가 필요했다.
개인적으로는 50도 미만의 온도에서 건조한 세척 청결고추가 농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농원은 고추 농사 규모가 크지 않기에 천연 건조 후에 고추를 하나씩 물수건으로 닦으면서 꼭지를 제거해서 고추가루를 만들 수 있지만, 농사의 규모가 큰 농가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많은 양의 고추가루를 만들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추 외피에 묻은 먼지와 농약 잔존물을 깨끗하게 제거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 점을 고려한다면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고추가루를 안심하고 먹기는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네에서는 우리 부부가 말린 고추를 닦는 것을 두고 말이 많다. 심하게는, 그렇게 할 일이 없어서 고추를 한 개씩 닦고 앉아 있느냐는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다. 매우 무례한 사람의 막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고추를 닦아서 고추가루를 만드느냐고 물으니, 큰 다라이(큰 고무 대야)에 고추를 쏟아 붓고 큰 수건에 물을 적셔서 한 무더기씩 고추를 담아서 닦는것이 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의 고추 닦는 것은 우리가 따라하기 힘들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건고추를 사와서는 마루에 앉아서 고추를 하나씩 닦으면서 꼭지를 제거한 후, 다시 그 고추를 담아서 방아간에 가서 고추가루를 만들어왔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많지 않은 양의 고추 농사이기에 아직 까지는 고추를 일일이 닦는 방식을 고집하는데, 우리 내외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량이 건고추 500근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올해는 건조기를 통해서 좋은 품질의 고추가루를 만드는 방식을 좀 고민하면서 모색해 봐야 할 것 같다. 가능하면 우리가 먹는 것은 농사를 지어서 파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 모두 마음 편하게 먹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현재 농가에서 재배한 고추를 작은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수집해서 중간상을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은 그리 좋은 농산물 유통방식은 아니라고 본다. 농가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농사지어 건조한 고추에 자신의 실명이 특정되지 않고 이런 저런 고추와 섞이는 상황이니 그 관리에 소홀함이 없을 수 없을 뿐더러, 고추 상인들의 농간에 의해서 가격이 정해지는 특성상 비용을 최소화하는 농법과 건조방식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고추의 국내산 자급율은 50%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실제로 작황이 좋지 않아서 고추값이 올라 서민 물가에 부담이 되는 상황이 되면 정부에서는 수입고추를 방출해서 물가를 잡아야 하는데, 그것은 나름대로 이해를 하지만, 이익과 관련되는 부분에서는 수입 냉동고추를 가지고 각종 불법과 탈법으로 폭리를 도모할 기회가 있기에 원산지를 속인 소위 가짜 고추가루가 시중에는 상당량 유통되는 것도 우리가 당면한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방자치단체나 지역 농협 또는 농업법인이 기계화된 고추가공업체를 설립해서 위생적으로 세척하고 건조한 후 소량으로 포장하여 마트에서 판대하는 고추가루를 사서 먹는 것이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닐까 싶다. 그외 우리와 같은 소규모 가족농이 생산하는 고추의 경우는 친지를 중심으로 한 직거래 방식으로 고추를 거래하는 것이 책임성이 담보된 유통방식이 아닐까 싶다. 개인 홈페이지나 불로그에 전자상거래 방식을 도입하여 농산물을 거래하는 방식은 나름 장점이 있지만, 책임성이 보장되고 검증 가능한 유통 감독 체계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직접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주변의 농가에서 산 농산물로 불로그를 통해서 농산물을 판매만 하는 가짜(?) 귀농인을 나는 실제로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모든 농산물은 평균적인 수준을 기준으로 상하간의 품질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그런 차이에 합당한 가격 차이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나는 고추 상인에게 내 고추를 팔 때면 내 고추가 실릴 트럭 짐칸의 다른 고추와 섞여 버리는 우리 고추를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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