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월급쟁이로 다람쥐 쳇바퀴 도는것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전원에 대한 동경이 있다.
나도 그랬다. 특히 내 경우는 40이 넘어가면서 그런 증상이 심해졌던것 같다.
며칠전 뉴스를 보다가 귀농인의 70%가 독신으로 귀농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각자의 사정과 사연이 있을 것이지만 <귀농>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귀농인의 입장과 또 그 귀농인을 바라보는 현지 토작 주민의 입장을 모두 허심탄회하게 들어서 알아보고 싶다.
나는 귀농을 <국내이민>으로 스스로에게 규정했다.
그래서 귀농인들과의 연대를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과의 인적 네크워크가 보잘것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니까 외국에 이민가서 한국인들끼리 집단주거지를 형성하고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새롭게 유입되는 이민자들을 상대로 먹고사는 그런 이민의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내가 어떤 뜻으로 한 말인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즉 귀농인 스스로가 자신의 귀농이라는 선택이 이민 수준의 <문화적응>이 절실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 귀농인만이 귀농인 네트워크의 의미있는 구성원이 될 수 있고, 또 그런 네트워크가 실제로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귀농인의 정착률(3년이상)이 30%를 넘기 힘들다는 귀농 관련 통계를 접한적이 있는데, 그것과 <싱글귀농>과 연관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몫하는 장정이 남의 일은 도와서 품삯을 잘 받는 상일꾼은 될 수 있지만 자기 농사를 지을 수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 반면, 70노부부는 작으나마 자기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했다. 즉 농사는 한 개인의 힘이나 기량, 경험 못지 않게 그 일을 곁에서 보조하고 도울 다른 사람의 존재가 절실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귀농인의 숫자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실제로 귀농하여 정착 가능한 귀농인, 그리고 그런 귀농인을 위한 귀농정책이 실질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각 자치단체마다 경쟁적으로 귀농인을 불러모으는 경쟁을 하는데, 그런 경쟁이 의미가 있는지는 귀농정착률을 한 번 자치단체별로 비교해서 그 성과를 냉정하게 분석해 보는것이 필요하리라 믿는다. 현실적으로 지방교부세의 산출 기준이 되는 인구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도시에서 도피하듯 막연한 꿈과 낭만적인 기대를 품고 온 사람에게 부동산을 팔아 넘기고 주민등록상의 인구를 늘리는 것보다는 이왕이면 농촌에서 생활 공동체에 적응하여 지속가능한 농촌의 구성원이 되는것, 나는 그것이 의미있는 귀농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그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절실하고 또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언제나 현재보다 더 편하고 조건이 좋은 다른 생존 방법이 있다면 귀농을 접을 수 있거나 심지어 귀농지를 옮기는 그런 사람들과의 얕은 네트워크는 지속 가능성이 희박한 신기루와 같은 것이기도 할 뿐 아니라, 귀농인에 대한 현지인의 인식에도 부정적인 기능이 크게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가장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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