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이야기

귀농 성공의 조건 : 가족농이 되어야......

sunis 2019. 8. 1. 18:03

농촌 생활에 뜻을 두고 2011년 경에 읽은 책이 있다.

서점을 자주 들르던 나는 서가에서 "온 삶을 먹다(Bringing it to the Table)"라는 미국 농부이자 문필가인 웬델 베리(Wendell 

Berry)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은 산업화 시대의 농업의 현실에 대한 고민과 대안이 여러편의 짧막한 에세이 모음으로 편집된 책이었다.

 

이 책이 지금도 책방에서 판매가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내 의구심의 바닥에는 이 책이 그렇게 대중적인 인기를 끌 내용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돈을 매개로 모든 지식과 정보가 유통되고 돈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은 출판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 지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이후 2쇄, 3쇄가 이어졌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해서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의 큰 줄기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우리가 사는 시대가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너무 많은 문제를 미래로 연기한 채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상황이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좋은 먹거리를 찾으면서 정작 그 좋은 먹거리의 생산과정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관심이 기울여지지 않은채 대량 생산과 박리다매의 농산물 판매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나는 농사를 짓는 농부, 그리고 농가가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좋은 먹거리가 나올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런 측면에서 건강을 위해서 유기농 제품을 찾으면서 정작 그 가격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은 소비자에 대해서 나는 참으로 이기적이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좋은 만큼 다른 사람도 좋아야 하고, 최소한 나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의 희생을 외면해서는 좋은 사람일 수 없다는 생각을 인생의 황금율로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그런 자기모순적 사고나 태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로 내 이익과 타인의 이익 또는 고통을 형량하여 균형감있는 사회적 태도를 갖춘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의 삶을 뒤로 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하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의 자세와 관점을 갖는것이 옳을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던 차에 문득 웬델 베리의 책이 생각났고, 그의 책에서 내가 인상깊게 읽었던 <가족농을 옹호한다>는 1986년에 쓴 에세이의 내용이 새삼 새롭게 주의를 끌었기 때문에 귀농과 관련하여 이 주제를 말해 보고 싶어진 것이다.

 

가족농이란 한 가족이 농사짓기에 충분할 정도의 작으며, 고용한 사람으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을지언정 그 가족이 직접 농사짓는 농장을 뜻한다. 즉 규모에 있어서 가족이 수용가능하며 그 노동력이 임노동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부득이한 경우 타인의 노동력을 빌릴 지언정 가족 구성원이 직접 농사를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그런 농업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현재 이 나라의 귀농 정책에서 가족이 이주하지 않고 세대원 1인이 이사하여 주민등록상의 인구 1명을 늘리는 것을 성과로 보는 부분은 심각하게 반성할 부분이라고 본다. 즉 귀농인이 그 지역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필요조건의 충족 여부가 귀농인 여부를 판단할 제1의 근거가 되어야 함에도 현재 우리의 귀농 정책은 독신자의 귀농도 아무 문제 없이 수치상의 귀농 통계에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가족농이 농업 형태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특정한 작물의 효율적인 생산뿐만 아니라 그것을 삶의 과정에서 가족의 노력과 정성이 담긴 산출물로 보아야 비로소 농산물의 생산자나 농산물 자체, 그리고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 까지 좋은 먹거리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그 근본 이유로 하는 것인데, 1인이 시골에 이주해서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나는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부부 2인이 최소의 단위로 귀농인 1세대로 인정되어야 지속가능한 귀농정책이 성립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현재의 지방자치단체들의 부실한 재정자립도를 보완하는 지방교부세의 산출 기초가 되는 표준적 재정수요의 산출에서 인구수가 중요한 탓에 각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귀농인을 불러모으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귀농인 개인을 본다면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귀농정책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늘 명심해야 할 것으로 본다.  즉 귀농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귀농인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구글이미지(한국농정)에서 인용한 사진

 

다음은 농촌지역에 널리 퍼진 각종 농업지원정책이 이런 가족농에 반하는 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유무상의 각종 지원정책은 그 수혜자가 1차로 농민인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 숨어서 이익을 보는 농업금융당국(농협)농약/ 비료/농기계등의 농산업 기업들, 그리고 불법담합의 행태로 각종 지원정책의 수혜를 돌아가면서 누리는 토착 수구 농촌세력가들이 사실상의  수혜자에 지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즉 가족농은 그 규모가 소규모일 수밖에 없는데 우리의 농업정책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는 미명하에 사실상 위에 말한 3자 세력이 농업지원정책의 과실을 향유하고, 대부분의 소규모 농가는 그런 정책의 부산물이나 찌꺼기 같은 작은 규모의 이익만 누릴 수밖에 없는게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정책자금이 절반 정도 지원되는 각종 정부 보조사업의 경우, 그와 같은 사양의 물품을 직접 구매하면 거의 2/3에서 1/2의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각종 시범사업이라는 미명하에 비교적 큰 영농규모를 보이는 토착세력에게 집중적으로 지원되는 각종 정책지원금은 그 토호세력들의 배를 부르게 할 뿐이고 대부분의 소규모 농가는 그런 모습을 멀리서 소 닭 쳐다보듯이 할 수밖에 없는것이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국가 차원, 그리고 자치단체 차원의 농업 또는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꾼들의 표몰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사악한 정치적 거래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농업정책이 대부분의 소규모 가족농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특정 작물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대규모 기업농의 육성이 병행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농촌 살리기 명분하에 토착세력이 독식 하다시피하는 농업지원정책으로는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는 쉬울지 모르지만 농촌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소규모 가족농이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을 전문적으로 발전시켜 농가 소득을 향상시키고 좋은 먹거리를 만들어 내기는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본다. 대기업이나 자본의 농촌 진입을 막고 그 대신 농촌의 토착세력이 준기업농의 모습으로 정부지원을 사실상 독식하면서 경쟁력도 높이지 못하고 싸구려 농산물을 박리다매식으로 농산물 유통업자에게 팔아 넘기는 현실에서 우리의 농업 지원정책은 철저하게 가족농 중심의 세밀한 지원책으로 그 방향을 과감하게 바꾸어야 한다. 그외 국가적 차원에서 일정한 수요를 충족하는데 필요 불가결한 경쟁력이 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대자본에게 진업 경로를 열어 주어야만 비로소 농촌이 자생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 사실상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지원으로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면서 내부적으로 농촌내 빈부 계층의 구분이 고착화 되고 농업과 농촌 발전은 답보 상태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첩경이라는 점을 꼭 강조해 두고 싶다. 

 

끝으로 귀농인에게 특별히 강조해 두고 싶은 말이 있다.

농촌의 토착 수구세력들은 변화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농촌만 그런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수구세력인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변화는 자신의 이익에 결부된 변화 뿐이다. 가령 자신의 토지가 높은 가격으로 팔릴 수 있는 각종 개발사업에는 지역발전을 운운하면서 능동적으로 대응하지만 자신에게 이익이 없는 변화는 늘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말로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숙원 사업의 외형을 띈 각종 민원사업도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야 말로 한 줌도 되지 않는 토호 집단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공론과 예산을 왜곡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들은 매우 변화가 느리고 상당한 수준의 고령화가 진행된 농촌사회에서 정치권과 야합하여 농촌 전체를 대표하는 양 목소리를 키우면서 사실상의 이익을 과점하고 있다는 현실을 귀농인은 꼭 염두에 두고, 그들이 가지 않는 길을 스스로 찾아 가도록 부단하게 노력을 해야 할것이다. 본질적으로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일 수 밖에 없는 가족농을 귀농의 모델로 삼아야 이런 토착 수구세력의 농간에 휘둘리지 않고 농촌에 정착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귀농인 중에 상당 수는 사실상 귀농지에 연고가 있는 귀향인인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런 사람들이 큰 범주의 귀농인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일점의 연고도 없는 곳에 간 귀농인이 그들과 이해 관계를 함께 한다는 착각은 하지 말기를 특히 강조해 둔다. 농촌에서의 삶도 이것 저것 알아가고 그래서 따져보면 대한민국이, 특히 농촌이 정치 과잉의 사회임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농협조합장 선거나 지방자치단체장 및 의원 선거, 심지어 이장 선출을 경험해 본 사람은 내 말을 뼈져리게 공감할 것이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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