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이야기

귀농 3년을 돌아 본다.

sunis 2021. 1. 26. 22:31

2017년 10월 시골로 이사한 후 만 3년이 지났다. 그러니 내가 소위 귀농을 한 지 3년이 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처음에 이 블로그를 만들 때 내 가 목표한 것은 2가지 였다. 우선은 내 자신의 시골 생활을 좀 더 긴장감있고 책임감있게 하기 위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그 다음은 부수적인 것인데 혹시 이런 저런 계기로 귀농 귀촌을 결심하여 정보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작으나마 보탬이 될 개인적 경험을 나눌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면에서 시골로 이사하여 살아온 3년의 세월을 돌아보니 그 3년의 세월속에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인생사에 잊을 수 없는 큰 일인 딸의 결혼을 비롯해서 지난해 연말에는 어머님이 돌아가시는 일이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2번 경험할 수 없는 일을 시골 3년의 세월에 경험했으니 참으로 다사다난한 시골살이 3년이었다고 할 수 있을것 같다.

 

구글 이미지 차용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의 귀농에 대해서 돌이켜 본다면 최근의 코로나 감염사태라는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포함하여 귀농은 내게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 할 수 있을것 같다. 서울에 남겨두고 온 자식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 보면서 속으로는 저 아이들이 나이 40언저리에 시골에 내려와 살겠다는 결심을 해 준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시골 생활에 대한 내 만족도는 높은 것이다. 사람마다 다 살아온 이력이 다르고 또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달라서 일률적으로 삶의 모습에 대하여 호오를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법이지만 나의 경우에 국한해서 본다면 서울 생활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은 거의 없다. 60년 가까운 세월을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살아온 나로서는 불과 3년 정도의 시골 생활을 통해서 그 서울 살이를 돌이켜 볼 때 참으로 허망하게 분주한 삶을 살았다는 아쉬움과 함께 지금이라도 내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고 내 삶을 스스로의 책임하에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시골에서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던 3년이었다. 

 

그런데 요즘 유튜브의 활성화로 가끔 그곳에서 젊은 귀농인들의 모습을 엿 보게 되면 아쉬운 점이 많다.

역시 시골도 자본화의 대세에서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인지, 내 자식 같은 젊은이들이 귀농인의 자격으로 2억에서 3억 정도의 빚을 안고 농사에 뛰어들어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귀농과 관련하여 농촌경제의 약탈적인 측면에 대한 경고가 별로 없는 것이 매우 불쾌하고 분노스럽기까지 하다. 자본주의의 특징 중 가장 적나라한 것이 내 주머니의 돈을 위해서는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외면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암묵적 동의가 아닌가 싶다. 매우 불편한 부분이다. 어쩌면 내가 평생 힘들어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시골에 내려와서 사는것에 아무 불편을 느끼지 않지만 아직 세상과 주고 받으면서 많은 것을 채워야 하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나와 같은 체념과 달관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젊은 사람들에게는 귀농을 선뜻 권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흔히 성공적인 귀농 사례로 회자되는 경우,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대체로 귀농인이라기 보다는 귀향인이라고 해야 할, 지역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 부모 형제의 배경을 유 무형의 자산으로 지니고 시골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무 연고가 없는 낯 선 곳에서 외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겉으로 드러난 것과 같이 호의적이지 않은 것이 우리 농촌, 아니 우리만이 아닌 대부분의 농촌의 특징이다. 즉 낯선 사람과의 섞임이 불편하고 그런 불편함을 현지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그들 서로간의 유대와 연대로 나누어 감당할 수 있지만, 이주해 온 사람은 그 모든 불편함을 온전하게 다 스스로 감당하고 겪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텃세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 문화의 본질적인 속성이 폐쇄적이고 배타적일 수 밖에 없기에 외지인은 그것을 당면한 현실의 조건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이주민들은 지역경제에 어떤 이익이 될 것을 기대하고 예상하여 다양한 귀농귀촌 정책으로 그것을 포장하여 감추고 있다는 것도 미리 알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숙명적인 모습이므로 도시와 시골이 다를 것이 없다. 즉 남의 주머니의 돈을 내 주머니로 옮기는 것이 경제적인 성공이라는 것이 자본주의적 성공의 냉혹한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의 어려움 속에서 사회적 경험이 거의 없는 젊은이들이 희망과 열정을 자산으로 하여 귀농창업자금을 융자 받아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안스러울 뿐이다. 그러므로 혹시 젊은이들이 귀농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갖고 있다면, 현실은 도시와 농촌이 공히 냉혹하다는 점을 미리 전제하고 귀농을 생각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즉 빚은 어떤 좋은 조건이나 아름다운 명분이 있어도 미래의 삶을 저당 잡히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행스럽게 그 빚을 밑천으로 해서 좋은 결과를 거두면 밝은 미래를 맞을 수 있지만 여의치 못해서 원했던 바와 다른 결과에 이르면 그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 처럼 나이가 든 은퇴자와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은 욕심을 갖지 않으면 미래를 위해서 많은 것을 기대하고 투자 할 이유가 적다. 그래서 나의 지난 3년의 시골생활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본다. 물론 그 이면에는 서울에 남은 가족들이 시골에 내려간 가족이 염려스러워 음양으로 도와준 부분이 없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농촌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겠다는 젊은이는 좀 더 현실적인 설계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경쟁적으로 귀농인을 유치하려는 것은 결코 귀농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자치단체의 이익과 관련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성공할 사람은 서울이건 시골이건 가리지 않고 성공하는 법이다. 도시에서 실패했거나 성공의 길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대안으로 만만하게 시골을 찾아서 재기를 노리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하지는 않다. 사람이 사는 것은 도시와 시골이 다르지 않고, 사람의 좋고 나쁨은 도시와 시골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한 줄로 요약하면, 귀농 귀촌한 사람은 각종 지원 명목의 빚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