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귀농 5년이 가까워 온다.
지난 5년을 돌아보니 세월이 빠른 만큼 내 자신의 변화와 내 환경의 변화도 적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결론 부터 말한다면 나의 귀농은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판단한다. 즉 너무 큰 욕심이 없었고 그래서 너무 서두르지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구분을 제대로 한 것이 귀농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애초에 시골에 연고가 있고 그 연고지로 돌아가서 농사를 생업을 삼기로 한 귀향인의 경우와 달리, 아무 연고가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결심한 사람에게 시골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아침에 내 농장을 둘러보니 많은 것이 달라졌고 또 변화했음을 느낀다.
처음 1,000평 정도의 집과 밭이 있는 땅을 사서 집을 수리하면서 시골에서의 삶을 상상할 때 설레임과 걱정이 없지 않았지만, 실제로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이사짐을 모두 옮겨놓고 나서는 희망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그래서 매사 일의 앞뒤를 구분하는 것 조차 가늠할 수 없기에 그랬던 것이다. 물론 나는 예전부터 근거없는 낙관론으로 일을 벌이는 사람은 아니고 매사를 천천히 생각하고 나름 치밀하게 계획을 해서 일을 처리하는 습성이 몸에 밴 사람이라서 신중하게 시골 생활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마음속에서 교차하는 걱정스러움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보통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나 역시 할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성실함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은 내 삶에서 늘 함께 한 탓에 그 걱정스러움과 두려움을 하나씩 극복할 수 있었다. 즉, 우연과 행운에 성공과 성취를 기대한 적이 없었던 나의 성향은 기본적으로 농촌에서의 삶에서 매우 긍정적인 요소가 되었던것 같다. 지금도 나는 고추 농사를 기본으로 하지만, 내가 고추 농사를 시작할 때 주변의 귀농인들은 하나같이 고추 농사를 말렸던 기억이 난다. 그 이유는 딱 하나, 고추 농사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 오히려 그렇다면 고추 농사부터 시작하는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심성은 쉽고 편한 길과 방법에 눈길을 돌리고 그에 더하여 편법과 요령으로 성취를 탐하는 성향이 강한 편인데, 나는 이상할 정도로 그런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그렇게 영리하고 실리적인 사람이 못된다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나는 내심 그런 내 성향에 은근한 자부심을 느낄 정도였다. 내게 고추 농사를 막았던 사람들 중 귀농에 성공한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재배해서 1년에 1억 2억을 벌었다면서 침을 튀기면서 떠들던 사람들이 지금은 농사를 접고 이런 저런 일자리를 전전하는 모습을 보면 착잡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것도 그 사람의 삶이기에 내가 그들의 삶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타인의 성공담이 나의 성공의 거울은 될 수 있을 지언정 그 성공은 스스로의 노력과 실천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추 농사는 지금도 나의 주력 작물이고, 작년에 심은 불루베리는 비록 아직은 수령이 어려서 많은 결실을 기대할 수 없지만 새로운 수익 작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해 주고 있으며, 그외 금년초에 새로 산 800여평의 농지는 내년부터 노지 작물을 재배하면서 농사규모를 점차 늘려갈 기반이 되었다. 마음으로 그곳에 비닐 하우스를 더 지어서 농사 규모를 키워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나이도 있고 또 아직 농사일에 완전하게 적응하지 못했다는 판단으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서두를것 없이 차차 농사를 지어가면서 결정할 일이다.
농사외에 내심 만족하는 것은, 짬짬이 내가 읽고 싶은 책, 아니 정확하게는 과거에 허겁지겁 읽었기에 천천히 되씹으면서 다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과거 아파트에서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들었던 음악들을 내가 듣고 싶은 음량으로 아무때나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시골 생활을 선택한 탓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마지막으로 오랜 기간 내 취미의 한 부분이었던 사진(필름)을 찍을 수 있다면 내 귀농은 안착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냉장고에서 묵어가는 이미 유효기간 지난 흑백 필름들을 버리지 않는 것도 언젠가는 사진기를 들고 시골 풍경을 기록할 날이 있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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