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교향곡은 다른 작곡가에 비해서 비교적 적은 편인 4곡에 국한되고 전곡이 인기가 높은 곡들이므로 전집 음반이 비교적 많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브람스 교향곡을 모두 들어보겠다는 의지를 갖고도 다 듣기가 힘들것이라고 짐작한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푸르트벵글러의 전집(개별음반의 모음)을 비롯하여, 오토 클렘페러, 부르노 발터, 한스 슈미트-이제르슈타트, 존 바비롤리, 칼 뵘, 쿠르트 잔덜링(2종),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 10여종을 넘는 전집을 갖고 있다. 아마 음반 라이브러리를 더 뒤지면 2~3종은 더 나올 것이라고 짐작한다.
브람스의 작품은 독일 낭만파 중에서 비교적 보수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 그의 작품은 고전파적인 양식 위에 서서, 중후하고 북독일적인 맛을 지니고 있다고 하며, 또한 현란하지 않은 아름다운 서정성도 갖고 있다. 이런 브람스의 교향곡 중에서 내가 특별하게 편애하는 전집은 쿠르트 잔델링의 전집 2종, 존 바비롤리의 전집, 그리고 오토 클렘페러와 칼 뵘의 전집이다. 이런 내 기호에 따른 선택을 보면 음악을 들어온 눈치 빠른 분들은 내가 어떤 해석의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브람스에게세서 베토벤의 영웅주의적 숭고미를 추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애상적이고 감정에 도취된 후기 낭만주의의 과도한 감정 이입도 선호하지 않는다. 브람스라는 작곡가에게서 우리가 기대하는 음악의 모습은 객관적인 세평에 의한 모습과 감상자의 취향과 기호에 따른 주관적인 모습이 있을 수 있는데, 나는 그 객관성과 주관성의 편차가 그렇게 크지 않은 보편성이 높은 해석의 연주를 선호한다. 이런 취향은 개인차가 있는 법이지만 또한 시간이 가도 별로 변화가 생기기 어려운 것은 개인적 성향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인듯 하다.
브람스의 교향곡 전집 중 내가 특기할 전집은 쿠르트 잔덜링의 2종의 전집인데, 그것은 70년대와 90년대라는 20여년의 시간의 간극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해석의 차이가 매우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2종의 전집 중에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우월해서 하나를 배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드레스텐 슈타트 카펠레와의 초기 녹음은 해석과 녹음에서 베를린 심포니와의 전집에 비해 좀 더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정서적 느낌을 끌어 낸다. 그래서 음악이 좀 더 뚜렷하고 활기있게 들린다. 그렇지만 잔덜링의 브람스 해석의 기본틀은 과도한 감정의 발산을 억제하면서 진중하고 포근한 브람스의 낭만성을 녹음에 담아 냈다. 그러나 구태여 2종이 아닌, 한 개의 전집만 선택하라고 하면 다른 지휘자의 연주와의 차별성이라는 면에서 첫번째 녹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4곡 중 특히 1번이 인상적이다.
존 바바롤리의 전집은 60년대에 빈 필과 이루어진 녹음이다. 존 바비롤리는 음악을 매우 꼼꼼하고 치밀하게 만들어내는 지휘자다. 그러나 그런 꼼꼼함이 좀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구조적 안정성이 섬세한 아티큘레이션과 함께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가지의 요소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해석의 보편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지휘자들이 더러 있는데, 물론 그렇다고 그것이 능력의 부족 때문은 아니고 그냥 그 지휘자의 음악에 대한 접근방법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본다. 바비롤리의 브람스는 관조적이고 탐미적이다. 그래서 더러 좀 더 강렬한 낭만성을 기대하는 감상자에게는 어색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요란하지 않은 탐미성이 내포한 은근한 감성적인 쾌감은 그 여운이 빨리 날아가지 않아서 더욱 즐겁고 은밀하기 까지 하다. 세간의 평은 2번이 가장 높은데, 나는 3번과 4번에서도 2번 못지 않은 감동을 느낀다. 1번의 경우는 기존에 익숙한 브람스에서 좀 멀리 떨어진 느낌이다. 악장이 경과함에 따라 점점 더 악보에 드러난것 보다 더욱 치밀하게 마치 펜으로 정교하게 세밀화를 그린듯한 해석이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내게는 싫지 않다. 자칫 긴장이 이완될 위험성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는 바비롤리와 빈 필의 연주력에 감탄할 뿐이다.
역시 60년대에 녹음된 클렘페러의 전집은 이 지휘자 특유의 대범함과 느긋함을 기반으로 하여 품격 높은 낭만성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베토벤 등 다른 작곡가의 음악에서도 그렇듯이 클렘페러의 연주는 구조의 안정성과 세부묘사의 치밀함이 아주 자연스럽게 균형을 이루어서 듣는 사람이 조급함이나 답답함에 시달릴 겨를이 없다. 음악에 빠져서 가상의 시공을 부유하다가 음악이 끝난 후 비로소 현실의 내 자신에게 돌아오면 될 뿐이다. 1번도 좋고, 3번도 좋다. 만약 번잡함 없이 그냥 딱 한 개의 브람스 전집만 집어 들라고 하면 난 아마도 클렘페러의 전집에 손이 가게 될 것 같다.
칼 뵘의 브람스 전집은 그의 평생의 반려 연주단체인 빈 필과의 녹음이다.
칼 뵘은 그 외모에서 부터 현란함 보다는 점잖고 신중한 학자의 풍모를 풍기는데, 그가 빈 필과 만들어 낸 대부분의 음악들이 그런 이미자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나는 느낀다. 더러는 베를린 필을 비롯하여 다른 연주 단체와 연주를 하고 녹음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런 경우의 연주 녹음은 빈 필과의 녹음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베를린 필과 녹음한 브람스 교향곡 2번은, 같은 지휘자의 해석이라고 느끼기 힘들 정도의 강렬함이 인상적이다. 그런 경우는 베토벤의 교향곡에서도 더러 발견된다. 아무튼 빈 필과의 브람스 전집은 이성의 테두리에서 전개되는 부르주아적 낭만성의 정점을 보여준다. 즉 감정의 표현 과정에서 충동과 즉흥성을 절제하고 설득력있는 음성의 크기와 음조로 신중하고 예의 바르게 말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안에 내포된 세부적인 음악적 표현의 구체적인 모습들은 섬세하고 치밀하기 그지 없어서 감각적인 즐거움을 양보할 필요가 없는 것이 칼 뵘과 빈 필의 브람스 연주 녹음 전집의 특징이다. 물론 이런 연주 보다는 좀 더 강렬하고 화려한 연주를 선호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지휘자들이 새로운 연주 녹음을 수없이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이 녹음 전집은 다른 칼 뵘의 DG녹음들 처럼 DG 본사의 CD로는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서 만든 음반을 특별하게 출장가는 후배에게 부탁해서 구한 기억이 새롭다. 위의 음반 케이스가 그 때 일본에서 구매한 것인데, 그 내용인 CD는 다르다. 이 일본에서 리마스터링해서 발매한 음반은 그 음질에 대한 논란이 많았는데, 한마디로 소리가 맑고 투명한 점이 없이 무엇인가 웅얼거리면서 머뭇거리는듯한 탁하고 흐릿한 음색이 논란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2012년 쯤에 일본에서 다시 리마스터링(OIBP)을 하여 고가의 HMCD로 재발매했는데, 이 때는 음반이 종이 박스 케이스에 담겨서 나왔다. 그래서 이 음반을 일본에서 칼 뵘 에디션으로 발매했던 플라스틱 주얼케이스에 옮겨서 담은 것이다. 즉 외피는 일본의 칼 뵘 에디션 발매반이고 내용물은 나중에 음질을 보강한 OIBP리마스터링의 HMCD인것이다.
전집으로 4인의 지휘자를 언급했지만, 브람스의 교향곡에서 부르노 발터와 푸르트벵글러의 엣날 녹음이 주는 아스라한 회고적 낭만성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아울러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빈틈없이 균형잡힌 정교한 음악적 아름다움도 놓지기 싫다. 그리고 진짜 소중한 음반은 1980년대에 오트마 주이트너가 슈타트카펠레 베를린을 지휘하여 녹음한 베를린 클래식스라는 구동독 레이블의 전집인데, 내가 구한 음반은 어쩐 일인지 3매의 음반 구성인데 2번째 CD에 교향곡 2번과 3번의 1,2악장이 수록되었고, 3번째 CD에 교향곡 3번의 3,4악장과 교향곡 4번이 수록된 음반이다. 내가 매우 싫어하는 곡을 다른 CD에 나누어 담은 음반 편집인데, 그 연주와 녹음은 그 어떤 연주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만약 누가 내게 오트마 주이트너의 최고의 교향곡 음반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 음반을 말할 것 같다. 이 녹음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별도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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