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이야기

2021, 고추밭 정리

sunis 2021. 1. 4. 15:28

12월에 고추밭 정리를 시작했다.

늦게 익은 고추를 추려서 따내고 고추대를 모두 잘라서 말린 후, 하우스에서 꺼내서 불에 태워버렸다. 그리고 이랑을 덮었던 멀칭 비닐을 제거하고 점적호수를 제거한 후 볏짚을 깔아서 흙과 섞어서 로타리를 쳐주는 일이 밭 정리의 전부이다. 

 

그런데 지난 해에는 2020년 고추농사 마무리가 조금 지체되었다.

그래서 2021년 1월 3일에야 로타라를 쳐주었다. 지난해에 비해 대략 보름 정도 지체된 감이 없지 않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농사일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던 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 3월 초순경에는 이 밭을 쟁기로 깊이 갈아 주는 일이 필요하다. 3년간 농사를 지으면서 밭 정리에 나름 신경을 많이 썼다. 노지 고추 농사와 비가림 고추 농사는 밭 청소와 정리과정이 조금 다를 수 밖에 없다. 가령 밭 청소 과정도 노지의 경우는 밭에서 고추대를 모아서 처리할 수 있지만 비가림 하우스의 경우는 고추대를 비롯해서 모든 잔존물을 하우스에서 꺼내야 하는 것이 다르다. 이 과정은 노지에 비해 매우 번거로운 일이지만 고추 생육과정의 유리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가림 고추 재배에서는 당연히 감수해야 할 번거로움이다. 노지에서 고추 농사를 주로 하는 주변의 이웃에서는 우리의 고추밭 청소와 정리가 너무 번잡하고 공력이 많이 든다고 하지만 그것은 비가림 하우스에서 고추를 재배하지 않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나오는 말일 뿐이다. 나는 가능하면 모든 잔존물을 밭에서 제거하는 방식을 따른다.

 

올 해의 밭 정리의 마무리인 볏짚과 밭의 흙을 혼화처리하는 과정인 로타리 작업은 이장이 도와 주었다. 자기집 일과 달리 남의 집 일을 거든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지만 4년차에 이르도록 이 일을 계속 해주는 이장의 마음 씀이 고맙기 짝이 없다. 이런 주변의 크고 작은 도움들이 내가 생면부지의 시골생활에 안착할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올 해는 고추 모종을 직접 기를 생각이 없다. 그간 직접 고추모를 기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지만 작년에 고추 모종 기르기에 실패한 후에 생각이 바뀌었다. 규모가 작은 상태에서 고추모종을 직접 기르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올 해에는 작년 모종 실패 때 도움을 주었던 이장의 친구인 선배가 자기집에서 모종을 길러 주기로 하였다.  

대신 나는 올 해에도 고추밭의 토양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쓰기로 했다. 흔히들 고추가 연작피해가 심하다고 하는데 이는 토양 관리와 맞물린 문제라고 본다. 선순환이 가능한 토양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약탈적인 농사 방식은 자연 연작피해가 심각할 수 있을 것이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토양관리에 신경을 쓴다면 연작피해는 피해갈 수 있다고 본다. 그 핵심은 토양의 물리적 특성을 양호하게 유지하도록 신경을 쓰는 일이다. 물론 시비를 통한 화학적 특성의 변화도 결과적으로 토양의 물리적 특성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치밀한 시비계획이 필요하다. 매년 볏짚을 넣고 로타리를 치면서 토양 개선제를 사용하고 토양 분석을 통해서 사전에 시비 설계를 해 온 우리 밭의 물리적 특성은 지금의 상황에서 보기에는 매우 양호한 상태라고 여겨진다. 이런 판단은 토양분석 자료를 통해서 확인을 해야 하므로 1월 중 토양분석을 의뢰해서 금년도 농사의 시비계획을  미리 짜 둘 생각이다. 4년차에 접어든 고추 농사에서 나는 남들이 말하는 고단함과 번거로움 대신 끊임없는 흥미를 느낀다. 그것은 사람들과 얽혀서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내 스스로 토양과 작물 그리고 방제 과정에 내 생각과 노력을 통해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일이 농사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먹을 농산물이라는 기준과 적은 비용을 들여서 좋은 값을 받아 성과를 결산하는 농사의 기준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소규모 가족농이 가야 할 길은 내가 먹을 농산물을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먹을 수 있게 기른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것이라고 본다. 농산물을 길러서 직접 수확하고 가공하여 그것을 먹을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방식과, 중간에 상인이 개입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그것의 수확은 상인에게 맡기는 방식은 그래서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익명성의 그늘은 좋은 농산물을 가리는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내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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