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끼고..

[음반] 슈만 교향곡 4번

sunis 2020. 6. 3. 17:08

문득 다른 곳에서 슈만의 교향곡 4번의 음반과 관련된 글을 읽고, 타고난 재능에 비해 욕망과 목표가 크고 높았던 탓에 스스로 분열할 수 밖에 없었던, 슈만의 교향곡 4번의 초판(1841년) 연주와 개정판(1851년) 연주간의 느낌의 차이를 스스로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슈만에 대한 내 개인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슈만을 열렬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의 불만과 비난이 가능하리라 믿지만 이곳이 내 개인의 불로그에 불과하므로 나는 개인적인 느낌을 굳이 감출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둔다.

 

사실 내게 슈만이란 작곡가는 그렇게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 법학 공부를 포기하고 음악가의 길을 걷기로 했으나 손가락의 부상으로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하고 다시 작곡가의 길을 선택했으며,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동경했으나 멘델스존이란 천재에 비해 스스로 재능이 부족함을 느끼면서 음악평론의 곁길을 모색했던 슈만의 작품으로 내게 인상적인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았음을 솔직하게 밝혀둔다. 게다가 결혼을 전후한 장인과의 갈등, 그리고 당시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로 슈만에 비해 음악계의 촉망을 받던 클라라와의 성급한 결혼을 둘러싼 소송과 이후 지지부진한 음악 활동으로 클라라의 연주회에 생계를 의존했던 상황 등을 고려한다면, 슈만은 탁월한 천재의 모습보다는 욕망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의 부진과 지체속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던 인물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슈만의 교향곡은 4곡이 알려져있는데 그 중 나는 제일 먼저 그의 교향곡 1번 일명 <봄>을 가장 먼저 경험했고, 이후 몇 몇 전집을 통해서 4곡의 교향곡을 모두 들어봤으나 그렇게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었던것이다. 그러던 중 푸르트벵글러의 지휘로 녹음된 교향곡 1번과 4번에서 슈만 교향곡에 대한 관심이 좀 더 고조되었을 뿐이다.

 

이런 내가 처음 슈만 교향곡 4번의 초판본 연주를 접한것은 니콜라스 아르농쿠르의 연주를 통해셔였다. 정확하게 언제 내가 해당 음반을 구입해서 들었던 것인지 지금은 기억이 흐리지만 나는 당시 슈만 교향곡 4번의 결정반으로 푸르트벵글러의 음반과 볼프강 자발리쉬의 음반, 그리고 오토 클렘페러의 음반을 꼽고 있었는데, 워낙 곡의 느낌이 좋아서 점차 다른 연주자들의 음반으로 그 감상의 폭을 넓겨가던 차에 아르농쿠르의 텔덱에서 출반한 음반을 발견했고, 이 음반은 3번과 4번이 함께 수록되었는데, 음반 표지에는 <No.4 First version 1841>이라고 특기해 놓았기에 주목을 끌어서 구입한 음반이었다. 당시 나는 이 연주를 듣고 그 호 불호를 판단하기 전에 우선 낯설다는 느낌에 이 음반을 방치해 두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이 교향곡4번이 사실은 1번의 다음에 만들어진 사실상의 2번이라는 것과 대중의 반응이 좋지 못해서 10여년을 넘긴 후에 수정을 해서 다시 발표하고 악보를 출판할 당시에는 이미 2번과 3번 교향곡이 출판된 이후라고 4번으로 자리를 옮겨서 번호가 붙었다는 사연도 알게 되었다.

 

이곡에 대한 악장별 간략한 설명이 안터넷에 떠돌고 있다.

제1악장은 클라라를 만나기 전에 보냈었던 방황의 시절, 제2악장은 클라라의 사랑스러운 모습, 제3악장은 사랑을 이루기 위한 고난의 투쟁, 제4악장은 사랑을 얻은 후의 환희를 표현한 듯하다는 설명이 간간히 인터넷상에서 보이기도 한다. 이런 설명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정확한 출전을 알지 못하는데, 이런 설명의 프레임으로 곡을 이해하는 기준을 삼게 되면 곡의 해석에 대해서 매우 편향된 관점을 갖게 될 위험이 있다. 나는 그저 낭만주의 교향곡으로서 곡의 전제척인 특성과 악장별로 지시된 빠르기와 감정표현의 기준을 기준으로 곡을 이해하고 그 곡에 대한 서사적인  프레임은 각자의 기준에 따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게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우선 초반본과 개정본의 악장별 지시어의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841년판의 각 악장별 지시는 전통적인 이태리어로 되어있고 1851년 판은 독일어로 되어있다.

1841초판 1851 개정판
Andante con moto - Allegro Ziemlich langsam - Lebhaft 매우 느리게 - 활기차게
Romanza : Andante Romanze(Ziemlich langsam) 로만체(매우 느리게)
Scherzo : Presto Scherzo Lebhaft 스케르초  활기차게 
Largo - Allegro vivace Langsam - Lebhaft 느리게 - 활기차게 

초판의 악장 지시어는 이태리어라는 사실외에 1851년 개정판과는 다소 템포 지시가 차이가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즉 1악장의 안단체 콘 모토를 독일어로 표시된 매우 느리게와 같이 보기는 어렵다. 자연 초판본과 개정판의 연주시에 악상 전개의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나는 아직 아르농쿠르와 가디너의 초판본 연주만을 들어봤는데, 1악장과 4악장에서 세부적인 수정이 이루어져 초판본의 다소 거칠고 투박한 악상이 상당히 다듬어진 면이 있고 그래서 한결 세련된 맛이 개정판에서 느껴진다.  자연 초판본에 따른 연주가 좀 더 템포에서 빠른 느낌이 있을 수 있고 오케스트레이션의 세련도에서도 차이가 있어 기존의 개정판본 연주를 들어 이 곡에 익숙한 사람이 처음 초판본 연주를 듣게 되면 매우 어설픈 연주를 듣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슈만 교향곡 4번은 전악장이 끊임없이 이어서 연주하도록 되었는데 이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양식이었다. 애초에 이곡은 1번교향곡를 만들던 시기에 함께 만들어졌고, 처음에는 <교향적 환상곡 Sinfonische Fantasie> 이라고 이름지었다는 말도 있듯이, 이 곡에서 슈만은 기존의 정형적인 교향곡의 형식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음악적 감각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이런 슈만 교향곡 4번을 슈만의 교향곡 작품 중 가장 개성적이며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또한 이 곡이 선진적인 주제의 순환 방식을 채택하여 전곡의 정서적 통일성을 치밀하게 구조적으로 도모한 작품으로 보고있다. 나도 대체로 통일성이 부족한듯한 아쉬움이 느껴지는 슈만의 작품 중에서 나름 교향곡 1번과 이 곡은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을 한다.

 

이 곡의 전통적인 명연주 녹음으로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베를린 필과의 녹음(1953년 5월) 음반이 부동의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비록 모너럴 녹음이기는 하지만 53년도의 DG녹음은 이미 LP시대에 접어들어 매우 정돈된 음악신호의 포착이 가능한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푸르트벵글러의 녹음 중에서는 큰 이질감이 없이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푸르트벵글러는 1악장 개시 서주의 어두운 선율을 비장미 넘치게 전개하는 부분에서 베토벤이나 브람스에서 보여준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후 곡의 완급과 강약의 조절이 기계적이지 않고 생동감이 충만할 뿐 아니라 음악이 가속이 붙는 부분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양감을 고양시켜가면서 유동성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연주를 들려준다.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 곡이 전개되면서 클라이막스에 이르는 과정과 곡이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는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냉정하게 말하면 슈만 교향곡에 베토벤의 옷을 입혔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연주다.

 

그 다음 스테레오 시대의 명반으로는 볼프강 자발리쉬가 드레스텐 슈테트 카펠레와 녹음한 EMI반이 명반으로 명성이 높다. 이 녹음을 듣고 있으면 드레스텐 악단의 음향의 울림이 특별히 다른 연주단체의 음향에 비해 더욱 풍성하고 자발리쉬의 서두르지 않는 침착한 악상 전개가 음악의 품위를 유지해 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큰 틀에서는 푸르트벵글러의 연주를 약간 순화시킨 좀 더 고아하고 품격있는 연주라는 느낌이 든다. 슈만의 교향곡은 적지 않은 녹음이 있는 편이지만 또 그 곡 해석에서 특별한 차별성을 보이는 경우도 드문 것 같은데 이 음반의 연주 녹음은 들을 수록 매우 독특한 품격이 느껴진다. 

 

그 다음으로 언금하고 싶은 연주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유럽 쳄버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음반이다. 이 음반은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내가 처음으로 1841년 초판본 버전의 연주를 경험하게 해 준 연주이다. 나는 처음 이 연주를 접했을 때, 그 때가 대략 90년대 중반으로 짐작하는데 아르농쿠르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 때는 이 지휘자가 좀 관심에 목마른 야심가가 아닌가하는 의심을 품고 있었던것 같다. 그런 편견도 있었고 또 처음 접하는 초판본 연주도 매끄러움이 없어서 그냥 한쪽에 유페해 두었었는데, 다음에 언급할 가디너의 슈만 교향곡 전집 음반에서 가디너의 초반본 연주를 접한 후 이 음반을 다시 들어보면서 매우 귀중한 연주 녹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그 때를 전후해서 아르농쿠르란 지휘자에 대한 내 편견이 타파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에 다시 들어봤는데, 매끄럽게 다음어진 개정판본과는 다른 풋풋한 슈만의 낭만성은 오히려 좀 투박한 이 초판본이 더 적절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음반은 존 엘리엇 가디너가 그의 수족 처럼 함께하는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슈만의 교향곡 전집 음반이다. 이 전집은 3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슈만이 법학 공부를 포기하고 음악의 길을 가기로 한 후 그의 고향 츠비카우에 돌아와서 1악장만 발표했던 2악장 미완성의 <츠비카우 교향곡>도 포함되어있고, <서곡, 스케르초와 피날레> , <4개의 호른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관현악소곡>이 1841판 D minor 교향곡과 함께 수록되어있다. 연주가 특히 다른 지휘자나 연주단체의 연주에 비해 탁월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지만 시종 신중하게 음악에 접근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기존의 음반들이 모두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연주들이었음에 반해 비교적 작은 규모의 원전악기 연주단체를 동원해서 음악적 골격과 형태를 또렷하게 그려내는 세밀화와 같은 연주는 신선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나는 이 음반을 통해서 슈만의 교향곡의 발전 과정을 일람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아울러 그간 방치해 두었던 아르농쿠르의 녹음의 가치와 그 지휘자의 존재감까지 모두 새롭게 각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니 내게 아주 소중한 음반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망설이다가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한 음반을 더 언급하고 싶다. 그렇게 특별하게 언급되지는 않지만 조지 셀이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슈만 교향곡 전집이 있다. 셀의 연주는 특별하게 흠잡을 곳은 없지만 대체로 빠른 템포에 다소 서두르는 듯한 연주가 많다고 느껴 내가 그리 좋아하는 지휘자는 아니었는데, 슈만의 교향곡에서는 매우 좋은 느낌을 주었다. 4번 교향곡의 경우에 굳이 스테레오 녹음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음반을 고르라고 하면 나는 셀의 음반을 선택하고 싶다. 악장 지시에 충실하게 이 곡의 낭만적 정서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표현했는데, 그 프레이징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막힘없이 유창하게 음악을 풀어내고 있어서 정서적 침투성이 높은 연주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앞에서 언급했던 푸르트벵글러의 연주와 대척점에 서서 이 곡 해석의 권위를 다툴 정도의 스마트한 명연주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