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크지 않으면 실망할 것도 많지 않은 법이다.
애초에 하향할 때 나와 아내의 꿈은 소박했다.
도시의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땀을 흘리고 몸을 움직이는 농사일을 하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천천히 농사일을 배워 땅에서 나온 소출이 있으면 우리가 먹고, 그리고 여분의 것은 서울에 남아있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나누어 팔아서 용돈 정도만 벌면 된다.
이게 우리 부부가 귀농을 결심하면서 갖은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1년간의 세월 동안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눈동냥하면서 탐색하던 인터넷과 블러그 상의 귀농관련 아티클은 이제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을 구분할 눈이 생겼다. 서울이나 대도시 그리고 농촌이고 사람이 사는 것은 마찬가지다, 착한 사람, 답답한 사람, 약삭빠른 사람, 그리고 나쁜 사람은 도시나 농촌이나 골고루 섞여있는 법이다. 시골이라고 순박한 시골사람이 산다고 생각하면 그건 아둔한 도시 사람의 착각일 뿐이다.
나는 일반적인 귀농자들이 보는 것에 더하여 지방자치가 시행되면서 벌어지는 지방정부의 예산 헛발질에 더 눈이 간다. 내 눈에는 헛발질이지만 그 예산으로 재미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공돈일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것은 공적인 예산의 본래 기능에서 한 참 벗어난 지방 토호들의 쌈지돈으로 전락한지는 꽤 오래된, 많이 왜곡된 예산이다. 즉 내 돈이 아니라 나라에서 주는 돈이니까 그 이름이 예산일 뿐 그것이 공적인 목적과 기능에 적합하게 소요될 자원이라는 생각은 애초에 없어 보인다. 그것을 배분하는 것이 군수나 공무원들의 선심쓰는 일처럼 여겨질 정도고, 그외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터무니 없는 부분에 들어가는 과도한 예산을 보면 그 이면에 숨어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과 집단들이 보인다. 그걸 내가 지금 따지자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걸 따져야 할 시간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 믿는다. 마냥 침묵할 일은 아니다. 좀 더 충분하게 산재된 문제들을 수집하고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작년 이사를 왔을 때와 지금 1년을 살아낸 상황을 비교하면 천양지차라고 할 정도다.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고 막연하게 무엇인가는 해야만할 것 같았던 작년의 우리 부부의 막막하던 심정......
지금은 해야할 일을 알고, 그 해야할 일을 어떻게 하면 좀 적절하게 할 지를 고민한다. 1년간 처음 해보는 고추농사로 건고추 1,000근 정도를 수확했으면 그 농사규모, 그러니까 한 마지기 농토에 1,100개의 고추를 심은 점을 고려하면 농사 실적은 무척 좋은 편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기쁜것은 간간히 텃밭에서 기른 푸성귀 등으로 끼니 때마다 신선한 식재료를 충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서울에서 먹던것에 비해 더 맛이 있었던 것은 그것이 상품화를 목적으로 한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은 농산물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1년 우리 부부는 아주 호사스러운 농산물을 먹으면서 지냈다. 땅에 무언가를 심어서 그것이 자라는 것을 바라보고, 그것이 자라면 따고 뜯어서 먹는것, 이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주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내 주변에서 시골생활에 호기심을 갖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아직 돈 쓸 일이 많은 사람은 섣부르게 농촌에 와서 무엇인가 해보겠다고 할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시골에서 수십년 농사를 지어왔고 선대에서 부터 이런 저런 연고로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가 충분하게 갖추어진 사람들과 새롭게 이주해 온 사람들의 경쟁은 애초에 그 승부의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즉 공정경쟁은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다.
아울러,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시못할 정도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그걸 연고가 있는 사람들은 각종 명목의 정책자금을 지원받아 충당할 수 있지만 낯 선 귀농인은 경험도 없이 그런 투자를 자기 위험으로 감당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귀농인에게 주어지는 각종 지원금을 받은것이 없었다. 대부분의 자치단체에서 주어지는 지원금은 일종의 미끼와 같은 것이고 정작 농지를 구입하거나 일정한 시설투자에 충당할 자금은 농협에서 일종의 정책자금을 융자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빚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경험이 일천한 귀농인이 귀농자금을 융자를 받아서 충당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물론 그걸 노리고 사기를 치는 인간들도 있다는 뉴스가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살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건전하게 살 사람이라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의 범위에서 귀농의 규모를 결정하고 이후 천천히 규모를 감당가능한 수준으로 늘려가는게 바람직할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내게 귀농인이라기 보다는 귀촌인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 말은 농사의 규모가 1,000평에도 이르지 못할 정도로 작으니 귀농인이라고 하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또 농사를 아주 하지 않는것도 아니니 그냥 시골에서 사는 귀촌인이라고 하기도 그렇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귀농인든 귀촌이든, 자신의 자금 여력의 범위에서 무리하지 않은 투자를 해야 하며, 농사의 규모도 자신이 처음 하는 일이니 만큼 천천히 배워가면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하며 긴 안목으로 규모를 차츰 늘려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성급하게 경제적 성취를 이루어야 할 사람은 농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없을것 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1년전의 밭의 모습과 지금의 밭의 모습 사진을 대조하여 보면 1년의 세월속에 담긴 것이 적지 않음을 느낀다. 폐농한 뽕나무 밭을 정리해서 고추밭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상태에서 남들에게 더러는 묻고 또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아가면서 한 겨울 내내 밭을 정리했다. 저 널부러진 뽕나무 잔해를 거둬서 한쪽에 모아 태워버리고, 뽕나무 뿌리를 캐내서 또 한 쪽에 치워두고 밭을 만들곤 했다. 그렇게 만든 고추밭에서 올 한 해 고추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작은 텃밭에서는 일상 먹을 것들을 심어서 여름에는 수박이며 참외도 넉넉하게 먹었고 가을에는 한 켠에 어설프게 심은 고구마도 캐서 먹을 수 있었고, 들깨와 콩도 거둘 수 있었으며 김장감도 심을 수 있었다. 남들의 눈에는 별것 아니겠지만 스스로에겐 그 조차 대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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