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경, 주변 사람들의 성화와 독촉으로 좀 늦게 배추 모종을 얻어서 김장용 배추를 심고 무도 파종했다.
아직 2개월이 조금 못된 기간이지만 배추와 무가 제법 자랐다. 처음 해보는 농사일이 고된것 보다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이든 땅에 심고 기르면 그 변화가 눈에 직접 보이는것 때문인듯 하다. 올해엔 직접 기른 김장용 채소와 고추가루로 김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시골로 이사한지가 꼭 1년이 지났는데, 그 1년의 시간속에서 꽤 많은 일을 새롭게 경험해서인지 지난 1년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꽤 높다. 이런것은 서울에서 살 때는 경험하지 못한 심리적 포만감이다. 도시의 삶에는 수치화된 성공지수나 만족지수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추상적으로 평가하며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기 만족과 위안을 찾지 않았을까? 마치 정치인들이 각종 통계를 통해서 자신의 업적을 대중에게 선전하는 방식을 자신에게 스스로 강요하듯이.....
무언가 작물이 내 손끝에서 자라고 결실을 맺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런 도시적인 삶의 성취감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다. 그건 내 땀과 노력이 어떤 재간이나 술수로 왜곡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초하는것 같다. 물론 그런 농사도 최종적인 상품으로 거래되는 과정에서는 분명 왜곡이 발생한다. 즉 돈을 매개로 한 교환, 즉 거래관계에서는 한쪽의 이익이 다른쪽의 희생이나 손실, 또는 손해와 교환되는 것이 불가피한 법이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돈은 필요하지만 돈이 인생의 주된 목표가 되면 삶이 건전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아주 전형적인 도덕군자의 고리타분한 결론이다. 물론 내가 도덕군자는 아니지만 옳고 그르고는 판단할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김장채소외에 한 켠에 시금치와 아욱등도 심었다.
말이 난 김에 지난 1년의 농사를 되짚어 회고하지 않을 수 없다.
고추 농사가 주된 분야로 정해졌는데, 고추 농사는 추석을 분기점으로 그 기세가 구분되는것 같다. 그러니까 고추 수확은 추석까지 부지런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판매의 대부분도 그 때에 이루어져야 가격도 나름 제대로 받을 수 있는것 같다. 물론 나는 아직까지 고추 상인들에게는 고추를 팔아보지 않았지만 동네에서 고추 농사를 지어 순회하는 수집상에게 파는 분들의 경우를 보면 그렇다. 11월 초에 고추대를 잘라내고 고추 농사 정리를 시작했기에 10월에 수확한 우리 고추도 불가피하게 막초로서 고추상인들에게 판매할 수밖에 없지만 그 과정에서 일조량이 넉넉하지 않으면 열풍건조기를 사용하는 법도 실험 삼아 해보게 되었고, 고추 상인들을 상대하는 요령도 귀동냥해서 듣기는 하지만, 상인을 상대하여 이익을 저울질하는 일은 역시 내게는 무척 힘든 일이다. 즉 나의 이익과 상대방의 이익은 서로간에 어느 일방이 상식선에서 손해 본 느낌이 없이 서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가 그간 살면서 견지해 온 일종의 생활원칙인데, 그건 내가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에는 관철할 수 있는 기준이었지만 공무를 떠나 사익이 각축하는 세상에서는 나 혼자 고집하면서 상대에게 요구할 수 없는 나만의 기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되고 보니 가능하면 그런 힘든 일은 피하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내년 농사도 내 나름의 방식대로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지어가고, 판매는 지인을 통한 직거래로 할 수밖에는 없을것 같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다시 읽어보니, 내가 그간 살아오면서 남과 다투기를 싫어해서 피해온 생활방식, 즉 이악스러운 다툼에 발을 들이지 않으려고 했던 습관은 늘 세상에서 나 보다 한 발 앞서서 세속적인 성취와 성공을 얻었던 친구들과 나와의 차이점이었다. 즉 다른 말로는 승부근성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말로는 성취 지향적이라고도 하는 성향이 내겐 없었다. 아니, 그런 욕심 마져 없었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그걸 내가 몸으로 감당하면서 성공하고 싶은 열정이 없었다. 그런 경우에는 늘 한 발 물러서서 그런 싸움판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이 내 모습이었던것 같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가족들이 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가장으로서 세상에서 도적질을 해서라도 처자식을 편하게 부양해야 하는것이 이 시대의 가장의 기본적인 책무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적인 세태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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