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2, 동백꽃

sunis 2022. 4. 12. 19:21

동백꽃은 내게는 늘 동경의 꽃이었다. 

서울서 나고 자란 나는 남녘에서 피고 지는 동백꽃을 보고 자라지 못했으며, 그 실물을 보기 위해서 19살 무렵 겨울,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43년전에 험한 길을 버스를 타고 고창 선운사를 찾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정작 동백은 아직 피지 않아 시들어진 동백나무만 늘어져있던 한적한 사찰을 둘러보고 오고 만 것이다. 그 이후, 어찌어찌하여 다시 동백을 보았을 때는 4월이 다되어 벗꽃이 만발하던 시절이었다. 

 

오늘 번잡한 농사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동백나무를 둘러보니 동백꽃이 만개해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벌써 2주전 쯤에 만개했는데 우리집 뒷켠에 심겨진 동백은 꽃이 피는 기색이 없어서 실망스러워했는데, 오늘 보니 꽃눈이 제법 많이 맺혀있고 동백꽃들이 하나 둘식 피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동경이 대상이었던 꽃이 이제는 내 집 뒷뜰에 자리잡고 있으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내가 나이들어 서울을 등지고 시골에 내려온 차이가 실감이 나는 대목이다.

 

농사철이 시작되면 마음이 먼저 바빠지고 몸은 마음을 따라 허둥대게 마련이다.

그래서 주변의 꽃조차 꼼꼼히 살펴볼 겨를이 없다. 오늘은 동백꽃을 본 김에 먼산을 바라보니 분홍색, 흰색 꽃들이 여기저기 듬성듬성 무리지어 피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비로소 봄이 왔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봄은 또 이렇게 온것이 느껴지면 어느새 금방 사라지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옛 사람들이 인생의 덧없음을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밭 만들기를 다 끝내고 고추 정식을 위해 밭을 둘러보면서 감나무와 사과나무의 얼기설기 얽힌 가지들을 정리하고서 땀에 젖은 몸을 씻고 나서 그간 잘 듣지 않던 모짜르트의 교향곡 38번 <프라하>를 들으면서 이 글을 끄적이는데, 어떤 때는 음악이 유난히 마음에 더 스며든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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